"캐나다에서 인종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범죄다. 그러나 모든 차별이 그렇듯 인종 차별은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미묘하고 감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나는 이유 없이 불친절한 슈퍼마켓 캐셔, 주문했을 때 분명 알아들은 듯해도 "뭐라고요" 하는 점원에게서 차별을 경험했다." 홍성욱 교수(서울대·과학사)가 쓴 '인종차별의 경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부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이들이 인종적 이유에서 내게 무례했거나 나를 감시했다고 증명할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차별의 직접적 대상이 되면서 나는 비로소 여성이 겪는 차별을 이해하고 페미니즘에 호의적이 되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과거 자신의 사고와 행동, 몸에 밴 습성이 얼마나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것이었는지 깨달았다고 적었다. 또 이로써 사회 일반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됐으며 플라톤 이후의 서구철학과 과학이 백인 남성의 세계관에 불과하다는 주장의 의미와 페미니스트 운동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백인중심사회에서 차이로 인한 차별을 절감한 뒤 세상과 학문의 틀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홍 교수의 고백은 '여성학'의 출발점과 과제를 드러낸다. 여성학이란 여성을 차별하고 왜소화시켜 온 사회와 대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키우고자 태동된 만큼 교육과 학문 연구 근저에 놓인 남성위주 사고를 없애고 세계와 인간 사회를 편견 없이 이해할 새 인식론과 가치론을 창출하는데 목표를 둔다. 1960년대 말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됐고 국내에선 이화여대가 82년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국내에 여성학이 도입된지 사반세기 여만에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조직위원장 장필화)가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19∼24일 서울에서 열린다. 이화여대와 한국여성학회가 주관하고 여성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76개국 2000여명이 등록한 가운데 동·서양의 문화적 가치충돌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 모성, 성매매를 비롯한 여성의 인권과 경제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남성학 대회는 왜 없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모쪼록 여성학대회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오기를 기다린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