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1999년 10월 서둘러 출국한 배경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이 지난 14일 김 회장의 진술이라며 출국을 권유한 것이 채권단과 대우 임직원이라고 발표하자 대우사태 당시 주력 계열사의 경영을 맡고 있던 최고경영자들이 “김 회장이 그런 진술을 했을리 없다”며 검찰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더욱이 이들은 “김 회장의 출국은 권력 최고위층이 경영권 회복이라는 미끼를 내걸고 적극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도 16일 서울구치소로 향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나서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국을 권유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겠다"고만 답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김 회장의 한 측근은 "김 회장이 1999년 10월 20일 중국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준공식을 마친 뒤 정상적으로 귀국했다"며 "그러나 하루 뒤인 21일 쫓기듯 서둘러 일본으로 출국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김 회장의 출국을 권유한 핵심 권력층이 대우 해체 과정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검찰은 16일 브리핑에서 "김 회장이 14일 검찰에 들어오자마자 '가볍게' 물어본 내용이다. 또 물어보겠다"고 한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대우 관계자들은 검찰이 '대우 타살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를 '가볍게' 물어보고 발표를 했다는 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여론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대우맨들이 검찰의 김 회장 출국 배경 발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김 회장은 물론 대우맨들의 명예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회장 개인 비서를 지낸 한 인사는 "검찰 발표대로라면 김 회장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비겁하게 도피한 사람이 된다"며 "당시 모든 것을 빼앗긴 김 회장이 무엇이 두려워서 나갔겠느냐"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우 관계자도 "대우사태 당시 끝까지 일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히던 김 회장이 도망치듯 갑자기 출국한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당시 권력층이 김 회장에게 외유를 권유한 정황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옛 대우인들 사이에서는 대우사태로 궁지에 몰린 김 회장이 1997년 대선 당시 제공한 정치자금 실태를 폭로할 것을 우려한 권력 실세가 출국을 권유했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김 회장의 출국 배경은 대우사태 처리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단초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우맨들은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우 관계자들은 대우 해체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기보다는 정부와 금융 당국의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의 자금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기업어음과 회사채 한도를 설정한 것 자체가 회생보다는 해체에 무게를 둔 정책이란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김 회장과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정책 라인에 있던 신흥 관료 간 불편한 관계가 결국 대우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기회에 대우 처리 과정에서 정책적 잘못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귀국하면 자동차 경영을 맡기겠다는 권력층의 꾐에 빠져 출국했다면 김 회장도 피해자가 된다. 만약 검찰 조사에서 김 회장이 2003년 포천지 인터뷰가 사실이라고 확인한다면 당시 정권과 경제 관료들도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우사태 당시 주력사 사장을 지낸 한 인사는 "대우 주력사 사장들을 대상으로 대법원의 판결이 난 만큼 김 회장은 무거운 실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개발연대를 이끌어 온 김 회장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익원·김병일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