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이 아파트 재개발사업 이권에 개입해 30억원대의 금품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난 `정릉파' 사건은 재개발ㆍ재건축 사업 비리의 `백화점'이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서 불법과 부패가 만연해 있었다. 정릉파는 재개발 사업에 관련된 회사를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 `고전적' 수법 뿐 아니라 조합장과 `한통속'이 돼 조합원 돈을 마치 제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마음대로 썼다. ◆재개발ㆍ재건축 관련회사 마구 갈취 = 정릉파 일당은 2001년 7월 정릉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공사를 방해하고 철거업자에게 5천만원을 뜯고 2003년 11월에는 재개발 아파트단지 상가를 분양받은 고모(49)씨를 협박, 수고비조로 5억원을 갈취했다. 이들은 지난해 2월 수원시 재개발 지역의 철거업자로 선정된 조모(43)씨를 불러 "내가 철거업무를 계약했으니 손을 떼라"고 협박해 조씨가 원청업체에 지급한 계약금 중 4억8천만원을 되돌려주지 않고 챙겼다. 작년 4월에는 의정부시의 재건축 조합원 총회장에 조직원을 도열시키고 H공영이 시공사로 선정되자 이 회사 부사장 김모(56)씨를 협박, "우리 애들 덕분에 시공사로 선정됐다"며 11억원을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정릉파 고문 표모(41ㆍ구속)씨는 작년 10월25일 새벽 의정부시 아파트재건축 시행사 사장 김모(43)씨를 파주시 자기집으로 납치해 흉기로 다리를 찌르며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들이 2001년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에 개입해 관련 회사로부터 뜯은 돈은 모두 27억원에 이른다고 경찰은 전했다. 조사결과 정릉파는 두목 허모(51ㆍ구속)씨의 여동생, 행동대장의 처 등을 조합원으로 위장가입시켜 42평형 아파트 3채의 분양권(7억2천만원 상당)까지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시행사ㆍ조합에 조직원 투입 = 정릉파는 재개발이 시작되면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조합간부를 포섭한 뒤 철거권, 시행사 선정, 상가분양 등 이권에 두루 개입해 돈을 챙겼다. 정릉파 두목 허씨는 2002년 부두목 전모(36ㆍ수배)씨를 부동산 컨설팅 회사 A사에 이사로 보내 성북구 정릉동 1ㆍ2구역 재개발 시행사로 선정되도록 조합 간부들을 압박했다. A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이들은 H공영에서 뜯은 돈을 A사 계좌로 입금하고 다시 이를 A사 계열사 계좌로 입금하는 방법으로 `돈세탁'을 하기도 했다. 두목 허씨는 또 정릉2구역 조합간부와 짜고 조직원 김모(34)씨를 조합이사로 심어놓고 자신의 매제이자 창문 섀시사업을 하는 전모(52)씨와 계약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조합총회가 열리면 검은 양복을 맞춰입은 행동대원을 총회장에 도열시켜 놓고 사실상 자신들이 움직이는 회사가 시행사나 시공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무언의 협박'을 했다. ◆공무원ㆍ조합장도 `한몫 챙기기' =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에 폭력조직이 준동하는 것을 막아야 할 담당 공무원도 이들이 주는 뇌물에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정릉동 재개발 사업을 관장한 해당구청 6급 공무원 김모(44ㆍ불구속입건)씨 등 공무원 3명은 정릉파가 운영하는 A사와 설계업자로부터 인ㆍ허가 관련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단란주점에서 400만원 어치 향응을 받았다. 또 구청 바로 옆 커피숍에서 건축업자들을 만나 수차례에 걸쳐 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머니에 챙겼다. 불구속 입건된 정릉1구역 조합장 이모(51)씨 등 조합간부는 2003년 6월 하청을 주겠다며 철거업체에게서 돈과 고급 양주를 받고 수백만원의 여행경비까지 요구했다.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릉2구역 조합장 박모(68)씨와 총무 정모(49)씨는 2003년 3월 조합 법인통장에 입금된 조합원 돈 2억원을 개인용도로 썼고 장부를 조작해 차액 5천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조합장 박씨는 2003년 5월 정릉파 두목 허씨의 여동생이 주택을 구입하자 조합비 1억5천여만원을 빼 집값과 취득세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서민들에게도 돈 뜯어 = 정릉파 두목 허씨는 정릉동 일대에서 `건달'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정릉파를 결성하기 전부터 부하들을 수십명씩 끌고 다니며 행패를 일삼았다. 허씨는 1996년 3월 정릉동의 한 양복점에서 조직원 40여명에게 입힐 검은색 양복을 맞춘 뒤 양복값 1천200만원 중 900만원만 주고 별다른 이유없이 "나머지는 못 주겠다"고 양복점에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정릉파를 조직한 1998년에는 조직원 밥값 40만원을 떼먹었는가 하면 강북구 수유동 한 나이트클럽을 사들이면서 인수대금 4억2천만원 중 2억원을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면서 건물주가 6개월간 밀린 월세와 관리비를 달라고 하자 흉기로 협박해 결국 건물주가 돈 받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허씨는 2003년 12월 말 조직원과 함께 정릉동의 한 식당에서 송년회를 하면서 400만원 어치 갈비와 술을 먹고 난 뒤 계산서에 `허'자를 사인하는 것으로 음식값을 대신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