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불신의 파괴력을 드러낸다. 오셀로는 용기와 덕을 갖춘 훌륭한 장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하 이야고의 농간에 말려들어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한 끝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죽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의심이란 이렇게 사람의 분별력을 앗아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안데르센의 동화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는 믿음의 힘을 보여준다. 할머니는 남편이 유일한 재산인 말을 소로, 소를 다시 양 거위로 계속 밑지게 바꾸다 마침내 썩은 사과를 들고 왔는데도 "정말 잘했다"고 칭찬한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부자와의 내기에 이겨 많은 금화를 얻는다. 할아버지가 내기에 응할 수 있었던 건 평소 할머니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신뢰란 이렇게 누구에게든 자신감을 안겨준다. 창업자의 가장 큰 특성은 스스로의 결정을 믿고 주저없이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하거니와 의심없는 믿음은 보통 사람에게도 자신감에 따른 과감한 실천력을 가져다준다. 이런 믿음이 실은 옥시토신에 의해 좌우된다는 연구결과가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는 소식이다. 짝짓기를 유도하고 분만과 수유를 촉진, 사랑과 유대감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신뢰 및 그에 따른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은 지난해 4월 미국 경제학자 폴 자크 교수에 의해서도 제시됐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신뢰야말로 국가경제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문화적 덕목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믿지 못하면 개인과 기업 모두 경제활동에 소극적이 돼 국가경제도 침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신뢰도가 높아져야 개인의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돼 경제도 살아난다는 얘기다. 우리 주변은 지금 온통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 믿음은 자신감과 활력 평화의 원천이 되지만, 의심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파멸의 씨앗인 분노와 좌절을 부른다. 신뢰호르몬이 상용화되면 이를 이용, 남을 속이는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뿌리째 뽑혀가는 듯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만 있다면 이거라도 한번 써보면 어떨까 싶은 건 지나친 생각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