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비롯한 세계금융시장이 '헤지펀드발(發) 금융위기설'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신용등급 추락과 맞물려 헤지펀드 대규모 손실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지난 1998년 당시 최대 헤지펀드였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위기에 몰리며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것과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6월 위기설 헤지펀드들은 지난 5월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이 정크본드(투기등급)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헤지펀드와 은행권의 손실규모는 약 32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헤지펀드들은 이미 지난 3월(-0.9%)과 4월(-1.75) 연속으로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추락,LTCM 사태 이후 최악의 성적을 보였다.이에 따라 원금을 까먹은 펀드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많은 헤지펀드들은 고객이 돈을 맡긴 후 최소한 3개월 가량은 환매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GM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던 시점이 지난 3월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6월은 아주 중요한 시점이 된다.환매제한이 풀리면 투자자들의 환매요구가 잇따라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6월은 펀드운용보고서가 제출되는 시기여서 펀드별 손실 정도가 실제로 확인될 경우 '투자자의 환매요청-자산매각-수익률 추가하락-환매'의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여기에 헤지펀드들에 돈을 빌려준 투자은행들이 마진콜(부족한 증거금 보전 요구)에 나서면 펀드들은 자산을 대량으로 처분할 수 밖에 없어 일부 펀드들의 도산 가능성까지 우려된다. ◆대규모 손실 이유는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손실을 봤을 것이란 관측은 이들의 독특한 투자행태에서 연유한다. 이들 펀드는 전환사채(CB)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즐겨 한다. 특정 기업의 CB를 인수하는 동시에 해당기업의 주식을 현물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고 주가가 내리면 공매도에서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상당수 헤지펀드들이 GM과 포드에 대해 이같은 포지션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GM의 CB가 대량 편입된 부채담보부증권(CDO)에 상당액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커크 커코리언이라는 억만장자가 난데없이 GM 주식을 공개매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엉클어졌다.이 발표로 GM 주가는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급등했고,때맞춰 나온 스탠더드 앤 푸어스 등의 신용등급 햐향조정으로 CB를 포함한 회사채 가격은 급락했다.주가와 회사채 가격이 모두 헤지펀드들의 포지션과는 반대 방향으로 급격하게 움직인 것이다. 이에따라 일부 펀드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위기설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은 최근 헤지펀드들의 투자환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선 신용파생상품의 급증이 새로운 불씨로 꼽힌다. 신용파생상품은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고수익을 쫓는 금융회사들의 자산운용 추세를 배경으로 지난해 전년보다 무려 3배로 급증한 8조5000억 달러의 발행 잔액을 기록했다.신용파생상품은 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운데다 투자은행 보험회사 채권펀드 연기금 헤지펀드 등 다양한 투자기관들이 서로 발행자와 인수자로 연계돼 있어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는 금융 리스크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이유로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물론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총재,워렌 버핏 등이 모두 신용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 오브 펀드(FOF)도 문제다. 현재 총 헤지펀드 자산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펀드는 위험분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 가뜩이나 수수료가 높은 헤지펀드에 또 하나의 펀드가 개입됨으로써 전체 수수료는 더 올라가 이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보다 위험한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이 과정에서 차입금도 더 많이 쓰게 된다.더욱이FOF에 편입된 한 헤지펀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위험이 확대재생산돼 FOF 전체로 파급되는 도미도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밀접한 관계도 금융위기 확대에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투자은행은 소위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를 통해 증권 위탁거래,계좌관리,대출,대주 등 헤지펀드의 투자관련업무 일체를 대행해주고 있다. 문제는 투자은행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무리한 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헤지펀드 위기설'이 대두된 초기에 도이체 방크 관련설이 제기되며 시장 불안을 증폭시켰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위기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저 퍼거슨 FRB부의장은 "헤지펀드의 내부 위험관리 시스템이 과거보다 훨씬 잘 정비돼 있다"며 "헤지펀드가 시장 불안의 주 원인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련업계에서는 "헤지펀드에 대한 체계적인 규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제2의 LTCM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각국 금융당국이 신속한 대비책 마련에 착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선태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