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 소설가 > 이쯤 되면 스승을 기리고 사표(師表)를 논하는 것도 사치다. 애들이 집회를 열어 사회를 성토하고 급기야 혀를 내두를 권모술수까지 부린다. 일을 여기까지 오도록 만든 주범은 교사도 학생도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도무지 해법을 찾지 못하는 교육부 관료들이고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교육행정이다. 거창하게 백년대계라고 말하지 말라. 교육 때문에 나라 전체가 속속들이 곪아가고 국가의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현재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각종 고질병의 태반은 교육에 원인이 있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이중국적 문제의 원인도 교육이고,부동산과 집값 문제도 마찬가지다. 빈부격차와 국민 계층간의 위화감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교육이 원흉이다. 있는 집 애들은 유학을 떠나고, 없는 집 애들은 일찌감치 비관하거나 절망한다. 심지어 자살도 한다. 그렇게 안 되려고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사는 속칭 '기러기 아빠'도 주변에 부지기수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도 교육문제가 으뜸이다. 교육은 한국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만든 지 이미 오래다. 입안자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할 법한 설익은 계획을 개혁이랍시고 발표할 때마다 나라 전체가 송두리째 뒤집힌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두고만 볼 것인가? 그동안 허다한 위정자와 행정가들이 책임지고 교육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한국사회는 과연 교육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단 말인가? 우리 교육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가치들을 제때 수용하지 못한다. 교과내용은 30년 전이나 크게 다름이 없고,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입시제도도 여전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않고 쓸데없는 잡학,불필요한 암기,재미도 가치도 상실한 공식과 도표로 애들을 고문한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학교만 졸업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수학을 전공할 것도 아닌데 왜 모든 학생들이 삼각함수와 미적분을 알아야 하는가? 생각해 보라. 세계적인 음악가,화가,디자이너,영화감독,작가,요리사,각종 스포츠 선수와 배우…. 이런 사람들을 우리 교육이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가? 천만에다. 그런 쪽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한국인의 위상을 빛낸 인물들은 모조리 돌연변이와도 같은 평지돌출이거나 부모를 잘 만난 해외 유학파들이다. 우리 제도교육권에선 한결같이 별종 취급을 받는 직업군(職業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하는 가치는 단 하나,오로지 공부 잘하는 아이다. 타고난 재능이 이 본류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 부모들의 엄청난 고행이 시작된다. 선생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희소성 때문에 막대한 액수의 과외수업비가 또 들어간다. 이유야 어쨌든 대학이 다양해져야 한다. 획일적인 잣대로 학생을 뽑는 천편일률적인 대학들이 각자 나름대로 특성을 추구하고 세계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에 걸맞게 학생을 선발하도록 자율권을 갖는 게 필수다. 대학이 바뀌면 고등학교도 바뀐다. 입시제도와 교육내용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대학의 변화에 재정지원이 어렵다면 일정 비율의 기부금 입학제나 졸업정원제를 허용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요행수가 판을 치는 근년의 입시제도보다는 본고사가 훨씬 폐단이 적었음도 강조해두고자 한다. 제대로 된 입시제도 하나도 창안해내지 못하는 교육부가 대학교육 전체를 장악하고 통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단언하거니와 우리 교육은 대를 물려가며 애들과 학부모, 교사들을 전부 죽이고 있다. 한창 세상이 아름답고 인생이 호기심과 자신감으로 충만해야 할 나이에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아이들은 생지옥 같은 학창시절을 보낸다. 이 족쇄를 풀어줄 어른들은 언제 낮잠에서 깨어날 것인가? 예산이 부족하면 초석이라도 놓아라. 그래야 희망이나마 품을 게 아닌가? 교육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미래가 없는 캄캄한 세월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