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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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시절 경복궁과 마주하고 있는 숭례문(남대문)은 일반인 뿐만 아니라 외국 사신들이 빈번히 드나들던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
숭례문은 또 풍수지리상 '불의 산'이라고 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는 일도 맡았다.
다른 성문과는 달리 편액이 세로로 되어 있는 것은 화기가 성문 밑을 빠져 나가 왕이 정사를 돌보는 경복궁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서울의 중심 문이면서 아울러 문밖에 칠패시장이 들어서 사람들이 북적대던 국보 1호 숭례문은 1899년 서대문과 동대문을 잇는 전차노선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형편없는 존재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름은 단순히 방향을 지칭하는 남대문으로 격하되고,일본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아래를 지날 수 없다며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부수었다.
2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하세가와는 "차 왕래에 지장이 많으니 낡아빠진 문은 없애 버리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문(門)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도로 한복판에 고립된 섬처럼 보였던 숭례문이 100여년 만에 시민들 곁으로 돌아온다.
숭례문 주변이 녹색광장으로 조성되면서 오늘부터 일반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전,지하도를 만들어 숭례문 가운데의 홍예문으로 나와 구경토록 하자는 구상에 비하면 이번 광장 조성은 훨씬 진일보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숭례문은 소생했다고 하지만 방치된 문들이 아직도 많아 아쉬움이 크다.
4대문 중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은 차도에 둘러싸여 질식할 것 같은 모습이며,4소문 중에는 돈의문 등 복원해야 할 문들도 많다.
이 문들은 어느 문화재 못지 않게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고 역사의 애환을 담고 있어 보존의 가치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화유산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과거를 들여다 보는 산 교육장이면서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이 내팽개쳐진 채 박제화돼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곽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숭례문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회가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