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고등학생은 '버스차장'이란 말을 모르고, 대학생은 부모세대가 말하는 '재건데이트'(돈 없이 주로 걸으며 하던 데이트)의 뜻을 알지 못한다. 버스차장은 80년대 초 사라진 직업이고, 재건데이트는 5ㆍ16 이후 널리 쓰인 재건이란 단어와 차비도 귀하던 시절의 합작품인 까닭이다. 유행어도 마찬가지다. 70년대 중반에 퍼졌던 '보지도 말고 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자'는 당시의 경직된 사회상, 80년대 초의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다'는 살인사건을 심증에 따른 용의자 자백만으로 해결하려던 데서 나왔다. "출세해서 남 주나" "누구 왕년에" "이거 되겠습니까" 역시 특정상황에서 생겨났다. 근래엔 "그까이꺼 뭐∼, 대충∼"이란 말이 유행이다. KBS 2TV의 일요일 밤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에서 생겨난 것으로 각종 전문직업은 물론 사회적 개인적 중대사를 한껏 희화화(戱畵化)하면서 여기저기서 인용되고 있다. 20대 중반의 개그맨이 만든 것으로 '뭐든 어려워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는데 결과는 좀 다르다. "한의사 그까이꺼 대충 잡초나 뜯어다가 푹푹 삶아 봉다리에 담아주면 되지 뭐" "마라톤 그까이꺼 대충 늘어난 런닝구에 짧은 수영복 반바지 걸쳐입고 뜀박질이나 하면 되지 뭐 그리 힘들 것 있나." "국회의원? 그까이꺼 뭐, 국회에서 대충 싸움박질이나 하면 되는 거 아니여"라고 하는 식이다. '그까이꺼 뭐 대충'의 확산이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뭐든 대강 해도 된다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건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의 개그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는 건지는 알 길 없다. 분명한 건 이 개그어의 소재들이 실은 하나같이 공과 품을 들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들이란 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찍이 사회적 대죄(大罪)로 일곱 가지를 지적했다. '원칙 없는 정치,도덕성 없는 사업,노동 없는 부(富),인격 없는 교육,인간성 없는 과학,양심 없는 쾌락,희생 없는 신앙'이 그것이다. 혹시 우리 사회 전반에 이같은 죄악이 넘쳐나는 게 '그까이꺼 뭐'의 유행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닐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