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중반 맥도날드의 패스트 푸드 체인이 로마에 진출하려 하자 이탈리아의 미식가들은 발끈했다.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 푸드야말로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음식을 먹는 동안의 기쁨을 동시에 빼앗아 가는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전국 미식가 모임인 '아르치골라' 회원들은 계속 모임을 갖고 패스트 푸드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을 제창했다. 이들은 패스트 푸드를 바이러스라고 지칭할 정도였다. 이 운동이 점차 국제적인 호응을 얻어가면서 1989년 11월 파리의 코믹 오페라 하우스에는 세계 각국의 대표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채택한 '파리 선언'을 보면 그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어 우리 모두의 관습이 망가뜨려지고 있으며,패스트 푸드가 우리를 굴복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패스트 푸드의 표준화에 대항해서 지역 음식의 풍부함과 향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영양과 칼로리의 불균형을 가져오는 패스트 푸드가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그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마침내 맥도날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패스트 푸드를 법으로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전 코네티컷주 의회는 대학교를 제외한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교내에서 패스트 푸드와 설탕이 든 음료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와 아칸소주도 법안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하니 패스트 푸드의 한시절도 이제 꺾이는 듯하다. 국내에서도 슬로 푸드 운동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작물이나 전통 음식을 발굴.보존함으로써 우리 먹거리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운동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고 동시에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덧 식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패스트 푸드가 느림을 추구하는 슬로 푸드로 전환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나아가 환경보호를 위해서다. 선진국의 운동 사례는 귀중한 교훈이 될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