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3일 별세한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국내 재계는 물론 학계와 문화?예술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경영인이자 문화인이었다. 고인은 아시아나항공을 설립,금호아시아나를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시켰으며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총수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떠난 1996년부터는 음악 영재 양성에 열정을 쏟으며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동했다. 1931년 4월4일 금호그룹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의 5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5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리노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졸업 후엔 케어스웨스턴대학과 UC버클리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68년 귀국,대통령 경제비서관에 발탁된 고인은 경제기획원 장관 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짧은 공직생활을 떠나 71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고인은 74년 부친인 박인천 창업주의 권유로 금호실업 대표이사에 취임,본격적인 경영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4년 선친의 타계 후 그룹 총수에 올라 계열사 간 합병과 비수익 사업 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으로 끌어올리는 등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제2창업을 주도했다. 특히 88년엔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항공운송업에 진출했고 금호타이어를 세계 10위권으로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인은 문화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도 유명하다. 96년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물려준 뒤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문화예술 지원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금호미술관을 건립해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중앙 화단으로의 진출 기회를 마련해줬고 90년에는 금호 현악4중주단을 창단한 뒤 60개국 70개 도시를 순회하며 연주활동을 벌이도록 도왔다. 음악 꿈나무 영재 육성 프로젝트의 하나로 젊은 음악가들에게 장학금 지급과 항공권 제공,명품 악기 무상대여 혜택을 줌으로써 이유라 손열음 권혁주 김소옥 등을 키워냈다. 2003년 7월에는 제4대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에 취임해 '1기업 1문화운동' 등 기업의 문화예술지원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고인은 기업인으로는 처음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외교통상부 공연자문위원장,외교통상부 문화대사 등 문화 분야의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지난해 2월엔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이 선정하는 '2004년 몽블랑 예술후원자상(The Winner of 2004 Montblanc Arts Patronage Award)'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음악계 인사들은 고인의 타계 소식에 한결같이 "기업가로서 박 명예회장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후원했던 이는 없었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김용배 사장은 "함께 의욕적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몇 개 있었는데 결실을 보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며 "음악계의 큰 별이 졌다"고 애도했다. 류시훈?김재창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