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 초옥 앞마당에 깃들 수 있을까.’


길을 나서면 늘 마음이 조급하다.


풍진을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흩뿌렸다.


조바심이 난다.


황산시(黃山市)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달려 황산에 들어선다는 황산대문을 지나쳤다.


버스는 황산 기슭에 몸을 부려 놓고 돌아 나간다.


자광각에는 벌써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이 수십미터 늘어서 있다.


1시간 이상 기다릴 때가 다반사란다.



황산 등반은 대개 해발 900m쯤의 자광각(慈光閣)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옥병(玉屛)까지 올라 등반을 하고 백아령(白鵝嶺)에서 운곡사(雲谷寺) 쪽으로 케이블카로 내려오거나 반대 루트를 탄다.


산 입구부터 오르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족히 7~8시간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황산은 옥병부터 본격 산행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10여분 동안 황산의 일면목이 드러난다.


어지럽다.


깊은 절벽 골짜기는 발 아래로 밀리며 더욱 깊어진다.


골을 만든 봉우리 두개가 좌우로 어깨를 세우고 늘어선다.


화강암 하나로 봉우리를 이룬 황산의 주봉 연화봉(蓮花峰·1864m)이다.


황산에는 36개의 큰 봉우리와 36개의 작은 봉우리가 각기 기기묘묘함을 감추고 있다고 하니 이제 하나를 본 셈이다.


연화봉을 바라보며 좁은 계단을 돌아 오르자 소나무 하나가 객을 맞는다.


황산을 찾는 이들을 처음 맞는다는 영객송(迎客松),잘 빠진 몸매가 푸른 빛에 잠겨 세한도(歲寒圖) 한 폭을 남겼다.


영객송의 환송을 받으며 암릉을 오르내리니 갑자기 길이 가팔라진다.


연화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절벽을 깎아 반듯하게 다듬은 계단길이다.


마치 천상을 향해 오르는 것 같다.


오른쪽은 만길 낭떠러지다.


난간을 잡았음에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언제 피었는지 삽시간에 천지를 삼킨 안개로 앞사람의 엉덩이밖에 안 보인다.


"봉우리도 기이하고 바위도 기이하고 소나무는 더욱 기이하다,구름도 날고 물도 날고 산 또한 나는구나(峰奇石奇松更奇,雲飛水飛山亦飛)"라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곳이 모 TV광고에서 청년과 할아버지가 '니하오' 하고 인사를 나눈 그곳이란다.


안내하는 동포 청년의 설명이다.


청년은 해양대학을 나와 배를 타다 황산을 한 번 보고는 반해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기괴한 바위 봉우리(奇岩),묘묘한 소나무(奇松),울울한 운해(雲海),온천(溫川)을 황산 사절(四絶)이라 하거니와 그 중 제일은 운해다.


영객송을 비롯해 용이 누운 모습 같다는 와룡송,앉은 검은 호랑이 흑호송 등 황산의 미인송도 볼 만하지만 원숭이가 운해를 바라본다는 후자관해를 비롯해 사람 얼굴을 닮기도 하고 꽃 등을 빼다 박은 몽필생화(夢筆生花),선인하치(仙人下棋),서우망월(犀牛望月) 등의 기암 봉우리에는 전설마저 절절하다.


그러나 천해(天海)에서 만나는 운해는 말이 필요 없는 장관이다,


연화봉을 넘어 물고기가 거북이를 업고 있다는 오어봉(鰲魚峰)을 바라보며 백보운제(百步雲梯)를 지나는 동안 안개가 걷히더니 '쨍'하고 햇살이 나온다.


산정에서의 날씨는 누구도 모른다더니 따갑다 싶던 햇살이 천해에 이르자 으스스 다시 사라지고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식힌다.


그러고는 말 그대로 파노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구름 바다는 봉우리들을 섬으로 만들며 우어우어 넘실거리면서 쓸려갔다 덮치며 철썩거렸다.


단애에 부딪친 다음 풍진을 씻어 서해 북해로 골골 빠져 나간다.


명나라 때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 서하객(徐霞客)은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더는 산이 없구나’(登黃山天下無山, 觀止矣)고 했다는데 그도 신들이 빚어내는 절창을 봤을 성싶다.


천해는 이곳을 중심으로 운해가 황산의 네 골로 뻗쳐 나간다고 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연화봉을 앞산.광명정(光明頂·1860m)을 뒷산이라 부른다.


뒷산 쪽으로 올라온 사람들과 앞산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천해에서 만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바로 배운정(排雲亭)으로 가 낙조를 보거나 주변 명소들을 관광한 후 하산한다.


그러나 황산 산행의 참 맛은 여기서부터다.


천해 입구 해심정에서 보선교(步仙橋) 이정표가 가리키는 샛길이 등산로에도 표시되지 않은 서해대협곡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샛길로 들어서자 떠들썩하던 주위가 고요해지며 조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지나온 길과는 사뭇 딴판이다.


평탄한 내리막길을 따라 좌우로 언뜻언뜻 협곡의 옆모습이 비친다.


마주 치는 사람 하나 없다.


간간이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휑하다.


한참 만에 멀리 봉우리 사이 허공을 이어 놓은 다리가 눈을 가득 채운다.


보선교다.


저 다리를 어떻게 놓았을까 싶다.


보선교부터는 섬뜩한 천길 낭떠러지 계단길이다.


절벽을 타고 허공에 길을 냈다.


연화봉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하다.


깎아지른 절벽에 꼿꼿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미인송들과 꽃나무들, 바라보는 곳마다 무협영화의 정지 장면이다.


이렇게 협곡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세 봉우리를 다시 오르는 이 루트가 서해대협곡 트레킹 코스다.


중국 사람들은 이곳을 마환경구(魔幻景區)라고도 부근다.


그만큼 괴기하고 환상적이다.


서해대협곡은 1979년 배운정에 올랐던 덩샤오핑이 한 번 보고 감탄하여 인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개발하라고 지시해 12년에 걸쳐 루트를 설계하고 9년 동안 공사를 했다고 한다.


이 절벽에 계단을 낸 이름 모를 중국인들의 땀과 그 가상함이 놀랍다.


황산=김지홍 기자 bongs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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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는 황산은 화중지방 안후이성(安徽省) 남쪽 4개의 현과 5개의 시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1990년 12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으며 10대 관광지 중 산악풍경구는 황산뿐일 정도로 그 수려함이 빼어나다.


기송 기암 운해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산수화가 진경이다.


우리네 설악, 금강을 닮기도 했다.


하지만 규모만큼은 한참 윗길이다.


황산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7.8도. 256일 동안 안개가 끼고 183일 동안 비가 내린다.


황산 등반은 5월과 6월을 적기로 꼽는다.


황산의 특산물은 10대 명차에 들어간다는 모봉차(毛峰茶)가 유명하다.


황산을 직접 가는 항공편은 없고 상하이를 거쳐 중국 국내선을 갈아타고 들어간다.


상하이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취항하고 있다.


상하이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50분, 상하이에서 황산이 있는 툰시(屯溪) 공항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황산 정산 부근에서 하루 묵을 경우 서해빈관 북해빈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오지 전문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중국 황산 ‘서해 대협곡 트레킹’ 상품을 내놓고 있다.


‘서해 대협곡 트레킹 4일’은 항저우 여행과 황산 등반을 결합한 상품이며, '서해대협곡 트레킹 5일'은 황산 트레킹에 상하이 항저우를 함께 돌아본다.


각각 69만원, 78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