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의 억만장자 커크 커코리안이 부진의 늪에 빠진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GM의 지분 5%를 추가로 매입하겠다는 기습적인 발표로 월가와 자동차 업계가 4일 발칵 뒤집혔다. 월가는 그의 투자 의도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GM의 주가 상승을 기대한 단순 투자인지,아니면 적대적 인수를 시도하기 위한 노림수인지를 저울질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커코리안은 카지노 및 호텔을 운영하는 MGM을 세번씩이나 샀다가 파는 등 라스베이거스와 할리우드에서 기업 인수 및 매각 거래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이미 투자회사 트라신다를 통해 GM 지분을 3.8% 갖고 있다. 그가 발표대로 5%를 추가 인수하면 GM 지분율이 8.8%로 높아져 스테이트 스트리트 뱅크 앤드 트러스트(17.65%),캐피털 리서치 앤드 매니지먼트(11.46%)에 이어 3대주주로 올라선다. 커코리안의 변호사인 테리 크리스트센은 "GM은 주가가 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여전히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다"며 "커코리안은 이 기회를 활용해 기업의 가치를 보고 수동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인수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GM은 올 1·4분기에 11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급락하고 있지만 2백억달러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고 금융 자회사 GMAC의 수익성은 대단히 좋다. JP모건의 분석가인 히만슈 파텔은 "커코리안은 GMAC를 매각하도록 GM 경영진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며 "GM과 수익성이 높은 GMAC와의 고리를 어느 정도 끊게되면 GMAC의 가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커코리안은 GMAC의 내재 가치를 보고 GM에 투자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코리안은 1995년 크라이슬러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어 결국 GM 인수를 위한 전초전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무성한 상황이다. 그는 크라이슬러가 위기에 빠졌던 1990년 이 회사의 지분 9.8%를 매입했다. 5년 후 크라이슬러가 66억달러의 현금을 확보하게 되자 주주들에 대한 현금 보상을 요구하면서 추가로 주식을 매입하다가 몇 달 후 전격적으로 적대적 인수를 선언했다.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그와 싸우느라 경영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양측의 싸움은 크라이슬러가 커코리안측에 이사 자리를 줌으로써 일단락됐지만 커코리안은 나중에 크라이슬러와 독일 다임러 벤츠의 합병을 문제삼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전력 때문에 월가에서는 GM에 대해서도 똑같은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GM의 경영진은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됐다. 분석가들은 왜고너 GM 회장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광범위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연간 56억달러나 들어가는 의료보험지원 축소 문제를 놓고 미국자동차 노조(UAW)와 협상 중인 경영진으로 하여금 좀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