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한참 협박하다 달래는 형국이다. 일본축구계가 2006독일월드컵 최종예선 북한-일본전에 대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3국 무관중 경기' 결정이 내려지자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밤(이하 한국시간) FIFA가 징계를 내리기 전까지 일본 축구계와 언론은 '북한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산케이 등 우익 언론은 지난 3월30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이란전 도중 발생한 관중 항의를 '폭도'로 까지 묘사하며 일본 선수단과 서포터스가 평양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위기감을 조성했다. FIFA에도 직.간접적 채널을 통해 일본 축구계의 입김이 한달 가까이 지속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본 축구계의 거물로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가와부치 사부로 일본축구협회장은 지난달 4일 제프 블래터 FIFA 회장과 일본에서 만나 북-일전의 제3국 개최를 강력히 요구했다. 만남의 명분은 월드컵 예선전 안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가와부치 회장은 "북한에 제재를 가하지 않고 경기에 임할 수는 없다"는 일본의 뜻을 강력히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FIFA로서도 지난 7일 일본 굴지의 전자업체 소니가 3억5천만달러에 FIFA와 '빅 스폰서' 계약을 하는 등 국제축구계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3월30일 북한-이란전 말미에 일어난 관중 항의는 시리아인 주심의 판정에 북한 선수들이 항의하면서 발생했지만 보도된 바로는 현장에서 부상 등 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앞서 코스타리카, 알바니아에서 발생한 관중 소요와 무려 105명이 경찰에 연행된 말리의 폭력 사태 등과 비교하면 북한-이란전만 유독 중징계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FIFA는 전례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제3국 경기로 월드컵 예선전 개최권을 아예 박탈한 데다 무관중 경기까지 이중으로 징계를 내린 사례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로비가 위력을 발휘해 북한이 국제축구계의 관행보다 훨씬 무거운 벌을 받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상황이다. 대한축구협회도 다른 사례를 수집하는 등 북한에 대한 징계를 완화하기 위한 근거 자료를 찾고 있다. 북한은 FIFA의 결정 직전 관중 항의를 '소요'로 표현한 이탈리아 언론 보도에 대해 단 한번 항의했을 뿐 징계 이후에는 어떤 공식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을 통해 조만간 FIFA에 이의 제기를 신청할 것이라는 관측만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축구계는 1일부터 북한을 '동아시아의 동료'로 표현하는 등 갑자기 돌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 압박에 앞장섰던 가와부치 회장은 2일 "동아시아의 동료로서 북한이 FIFA의 결정을 받아들였으면 한다"며 오히려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또 북한의 이의 신청이 있을 때까지 FIFA에 영향을 미칠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이상한 뉘앙스를 풍겼다. 일본축구계는 북한이 제3국 무관중 경기를 하게 된 만큼 입장료 수입 손실 만큼 재정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며 표정관리를 하는 상황. 가뜩이나 악화된 북-일 관계를 우려하는 탓도 있겠지만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한 일본축구계는 북한이 보이콧으로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면 2010년 월드컵 예선까지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자제를 호소하는 등 이중 플레이를 하는 양상이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