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국자본 규제 설득력 갖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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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현 < 고려대 교수 경영학 >
최근 외국계 금융자본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외국인 사외이사 수의 제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해 5% 룰 도입,그리고 외국계 펀드들에 대한 국세청의 전격적 세무조사에 이르기까지 외국계 금융자본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당국의 움직임에 대해 여러가지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명분론적으로 볼 때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5% 룰의 경우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문호를 개방할 당시 빠뜨린 규정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로 정비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룰 규정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4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영국은 이보다 더 엄격한 3% 룰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금융당국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정을 도입했다는 것 자체는 문제 될 여지가 없다.
또한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 조사는 조세 주권과 공평과세 원칙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탈세의 증거가 있다면 이는 국내 자본, 외국 자본 할 것 없이 누구나 조사받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외국계 펀드가 세무 조사를 받는다고 해서 그 자체가 시비거리가 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명분을 내세운 정책당국의 조치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속으로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매력적인 투자처로서의 한국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편한 속내는 한국의 금융정책을 맹비난한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외국 언론들의 시각에 잘 투영되어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은 정책당국의 최근 조치들을 합리적 정책수립 과정의 결과라기보다는 재·보선을 앞둔 국내 정치적 요인과 재벌의 경영권 방어 목적에 정부가 휘둘려서 나온 복합적 결과로 보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또한 외국계 펀드들은 자신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법률을 위반한 적이 없는 데도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취급당하면서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위한 희생양이 되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사후적으로라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최근의 정책적 조치와 미래정책 방향에 대하여 일관성 있는 설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향후 외국인 투자 관련 제도를 정비,보완할 때 다음의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투자자들이 지는 '규제 리스크'를 줄여주어야 한다. 외국 자본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적 청사진이 부족하고 국제소득 과세와 관련된 법규들도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 새로운 규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투자자들에게는 심각한 규제 리스크가 된다.
특히 이러한 규제가 '국민 정서'나 '정치적 고려'를 기저에 두고 만들어질 때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 정책은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통용되었는지 몰라도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맞지 않는 방향이다.
둘째는 정책의 '신뢰성' 유지 문제이다. 새로운 규정이 나오더라도 규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투자된 부분에 대해서는 새 규정을 소급하여 적용하지 말고 과거 규정을 준용하는 것이 정책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한국 경제가 어려울 당시 외자 유치를 위해 허용했던 비과세 투자에 대해 지금 와서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떤 외국인 투자자가 정부의 말을 믿고 한국 시장에 투자하겠는가.
정부뿐 아니라 언론의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언론의 태도는 외국 자본에 대한 국민 정서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도 또한 객관적이고 신중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해서 얻는 수익에 대하여 국부 유출이라고 하며 외국계 금융자본 모두를 투기 자본으로 간주하는 것은 국수주의적인 태도이다.
정부와 언론,그리고 우리 모두는 글로벌 경제시대에 맞는 좀더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