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제는 엄연한 프로이고 결혼해 아이까지 둔 선수도 있는 데 원산폭격에 구둣발로 목을 밟는 등 폭행을 가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한 네티즌의 공개 제보로 불거진 프로배구 LG화재 신영철(41) 감독의 구타 사건 때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선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추어 선수도 아니고 성적에 따라 몸값이 책정되는 프로 선수가 나이차도 많지않은 감독에게 폭행을 당한다는 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스포츠계의 구타 사건은 체육계 전반의 방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마와 프로를 가리지 않고 심심찮게 불거질 정도로 관행처럼 돼버린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 동계 종목의 `메달밭'으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쇼트트랙에서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코치에게 상습적으로 체벌을 당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후 대한체육회와 가맹 경기단체, 프로 구단을 중심으로 구타 근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자정 노력을 벌였지만 이번 프로배구에서의 구타 파문으로 또 한번 구타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신영철 LG화재 감독이 지난 14일 아마추어 초청팀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팀이 2-3으로 지자 선수들을 모아 놓고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박게 한 뒤 구둣발로 2명의 목을 밟는 등 폭행을 한 사실이 선수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것.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 스포츠계의 현실이 구타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뿌리깊은 구타 관행은 최근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의 선수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입증된다. 전국 16개 시.도 초.중.고.대학 선수 1천600명과 지도자 200명, 학부모 120명,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는 일반선수의 무려 78.1%(국가대표 4.9%)가 구타를 경험한 것으로 응답, 심각성을 보여줬다. 감독.코치와 선배 선수들의 구타 이유로는 `규율 및 지시에 따르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37.3%로 가장 많았고 `정신력 해이'(30.7%),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17.3%), `시합성적의 부진'(6.3%) 순으로 대답했다. 구타를 경험한 36.7%가 `당장 운동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운동이 싫어졌다. '고 말했던 것을 봐서도 구타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첨단 과학시대에 여전히 구시대적 악습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선수들을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할 수 없다는 자성론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