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에는 산업자원부로부터 불만 섞인 전화가 여러 통 걸려 왔다. 항의 요지는 다른 부처의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를 무시했다는 것. 재경부는 지난달 29일 '3월 들어 28일까지 수출액이 2백2억8천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5% 늘어났다'는 것을 골자로 한 '그린 북(속보 지표)'을 발표했다. 3월 전체 수출액은 대략 2백40억달러 정도 될 것이라는 추정도 덧붙였다. 당초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한국 경제가 꿋꿋하게 순항하고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문제는 월별 수출 실적은 산자부가 매달 초 보도 일자를 정해 엄격하게 관리해 온 통계라는 점이었다. 월말에 가까울수록 갑자기 늘어나는 수출의 특성상 20일 이후에는 어떤 추정치도 내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본의 아니게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산자부 지적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속보 지표에 수출 실적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비슷한 해프닝은 이달 들어서도 반복됐다. 이번의 주인공은 '신용카드 사용액'. 서민 경제와 직결되는 음식점 이·미용업소 슈퍼마켓 등의 신용카드 이용 실적이 두자릿수씩 늘어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발표 직후 곳곳에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신용카드 사용액에 최근 들어 급감한 현금서비스 이용액이 빠져 있는 데다 소규모 점포가 많은 일부 업종은 경기와 신용카드 사용액 사이에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경부는 업종별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율도 다음달부터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 통계에 대한 불신은 19일 통계청이 고용 동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불거졌다. 지난달까지는 전년 동월 대비 실업률을 앞에다 내세웠는데 이번에는 '전월 대비'를 강조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공교롭게도 3월 실업률은 전월 대비로는 떨어졌지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오름세를 지속했다. 정부 입장에서 국민은 고객이다. 하루 이틀 장사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고객의 신뢰는 필수다. 경기회복 조짐을 조급하게 강조하려다 괜한 불신만 쌓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안재석 경제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