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 교수 > 경제정책세미나 시간, 첫 학생이 나와 우리사회의 고령화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와 그 경제적 영향을 논한 것이다. 다음 나온 학생의 주제 또한 고령화다. 고령화 사회의 복지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 내내 고령화만 다룰 수 없잖은가. 다음 발표자부터는 다른 주제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오늘날 속절없이 늙어가는 우리 경제처럼 심각한 문제가 또 있을 것인가. 우연인지 잠재의식의 일치인지 두 학생은 그들이 가장 걱정해야 할 자신의 문제를 동시에 짚어낸 것이다. 노인사회가 곧 청년들의 미래이고 노인들은 그들이 떠맡을 짐이 아닌가. 통계청이 추계한 바에 따르면 2005년 노인 1인당 7.9명인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50년에는 1.4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들이 모두 일을 할 수도 없겠지만, 여하간 오늘날 8명의 생산적령인구가 부양하는 65세 이상 노인 한 명을 14년 뒤에는 4명이, 25년 뒤 2.7명이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초고속으로 늙는 국가는 세계에 없다. 프랑스에서 1백15년, 미국에서 75년 걸려 늘어나는 노령인구 비중(7%→14%)을 우리는 지금 19년에 이뤄내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고령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 병증은 이미 시작됐고, 향후 이를 방치한다면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아이들과 청ㆍ장년층이 줄어들어 소비는 정체하고 투자기회도 적어진다. 퇴직자는 오래 살고 실업자는 늘어남에 따라 연금, 의료보험 등이 증가하고 각종 연기금이 파탄난다. 늘어나는 사회보장 분담금 때문에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기피하고, 과도한 인건비가 기업수익성과 경쟁력을 해친다. 복지재정수요는 매년 턱없이 늘어나고 세금은 늘어나도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절제를 아무리 해도 국가의 일은 늘어나게 돼있어 활기찬 시장영역은 축소되고 사회주의가 진행됨을 막기 어려운 사정이다. 그러나 국가지원을 요구하는 사회집단이 늘어날수록 정권은 옳다구나 약속을 마구 풀어놓으며 인기몰이를 할 것이다. 실로 현세대는 미래세대를 갉아 먹고, 취업자는 퇴직자를 위해 일하는 막막한 사회인 것이다. 늙어가는 사회를 돌이킬 수는 없으며, 그 고용과 생활조건은 젊었을 때 쌓아놓은 축적이 결정한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품질이 높고 좋은 사회는 당장 국민소득 3만달러, 3만9천달러가 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와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런데 소득 3만달러에는 3만달러 경제의 고용과 복지가 있고 1만달러에는 1만달러짜리 삶밖에 없기에 모두가 피땀흘려 성장하려는 것 아닌가. 국가가 국고를 풀어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지원하고 복지를 살포하는 경제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일과 고생 없이 품질높은 일자리와 노후생활을 바라는 것은 '불한당(不汗黨)'의 꿈일 뿐이다. 한국경제에 그나마 활력이 유지될 기간은 이제 십수년 정도일 것이다, 이 기간에 1인당 소득이 매년 5~6% 성장하면 현재의 두 배까지 늘어나고, 2~3% 정도면 절반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지난 몇년간 세계경제가 기막힌 호황을 누릴 때 우리 경제만 성장대열에서 떨어져 금쪽같은 시기를 허비했다. 기왕지사는 떨쳐내고 지금부터라도 국가 국민이 합심해서 경제와 투자에만 몰두한다면 부족하나마 나은 미래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복지를 늘리고 수도이전 반미 자주국방에 국가위신 세운다고 자기만족하며 국가자원과 국민에너지를 낭비할 때인가.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울 때이다. 며칠 전 대통령은 "물가든 외환이든, 경제성장률이든 실업률이든" 우리경제가 탄탄대로 성장가도에 진입했다고 단언했다. 젊은 세대들은 대통령의 이런 경제적 낙관주의가 어떤 복지사회를 겨냥한 모험주의의 전주곡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미래에 어떤 고령사회를 가질지는 청년들이 '지금' 선택할 문제다. 미래에는 노인들의 표가 많아 그들이 마음대로 돌이킬 수가 없다. 이런 사실조차 노인들이 가르쳐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