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우덕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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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의 우덕송(牛德頌)을 읽노라면 소가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음머∼' 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우두커니 서서 꼬리를 휘휘 둘러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외양간에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금슬금 새김질을 하는 양은 성인이 천하사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장난꾼 아이놈의 손에 고삐를 끌리어서 순순히 걸어가는 모양이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것 같아서 거룩하고….
춘원이 이처럼 칭송을 아끼지 않았던 소는 논밭갈이를 하고 물건을 실어나르고 퇴비를 만들어 주는 우리 한우다.
과거 시골에서의 한우의 위치는 가족 그 이상이었다.
자녀들의 학자금 걱정을 덜어주고,혼례 비용을 충당해 주는 데도 소 만한 것이 없었다.
죽어서도 가죽과 고기를 남겼으니 재산목록 1호는 단연 한우였다.
한우의 역사는 고대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써래 등 농기구를 한우에 얹어 사용한 기록이 보이며 관직명에도 등장한다.
신라시대에는 우경(牛耕)을 장려했고,고구려에서는 소 도살을 금지하는 보호령이 제정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둔전우,조선시대에는 가축서를 설치할 정도로 소에 관한 정책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영농이 기계화되면서 한우의 가치가 과거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한우는 수입 소고기의 대칭점에 서서 축산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우가 이전의 날씬한 체형을 잃고 뚱보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는 소식이다.
30년 전에 비해 체중이 무려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다.
농사일에서 해방돼 '일소'가 아닌 '고기소'로 양육되기 때문이란다.
사료와 가축 개량으로 1천㎏이 넘는 소가 늘어나고,유전자 조작으로 육질 역시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우 가격이 수입 소고기보다 월등히 높은 데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순전히 고기 맛일 게다.
사육 소가 많은 까닭에 예전처럼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한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그렇다고 덕성스러움이 변한 건 아니다.
짐승 중에서 군자로 통하는 소의 교훈을 한번쯤 되새김질해 보면 어떨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