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들어 공직의 핵심 요직에 개방직 확대와 능력급제 도입 등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효율적인 정부는 기업이나 국민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바여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대표적 공공부문인 공기업의 사장 인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여전한 것을 보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이스라엘 공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발휘하는 비결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이스라엘 군수산업 취재를 위해 찾은 이스라엘 최대 기업이자 국영 항공우주업체인 IAI에서였다. IAI의 경우 모쉬 케렛 사장(72)이 올해로 21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고 있었다. '장기 집권' 비결을 묻자 케렛 사장은 "매일 열심히 운동한 덕분"이라고 위트 있게 받아 넘겼다. 내각책임제의 나라로 걸핏하면 정권이 바뀌는 이스라엘에서 라빈 총리 시절 임명된 케렛 사장이 정권이 여섯번이나 바뀌는 와중에서도 건재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IAI 지분 1백%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기 사람을 앉힐 수도 있다. 매출 2조2천여억원에 직원 1만5천명을 거느린 공기업의 사장 자리는 정권 입장에서 보면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여러 총리 중 사장을 바꾸고 싶은 유혹을 느낀 분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기업에 대한 평가는 시장에 맡기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혹을 뿌리쳤을 것이라고 봅니다. 국영 기업이라도 정치 논리보다 시장 논리를 따라야 살아남을 수 있죠.정권의 입맛에 따라 사장을 갈아치운다면 경영 안정성과 장기적인 전략 수립은 불가능하죠." (도론 서스릭 IAI 홍보담당 부사장) 엄격한 정경분리 원칙 덕분에 IAI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매출의 80%가량이 해외 시장에서 미국의 보잉 등과 경쟁해 올린 수출 실적이라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IAI에 비춰 우리 현실은 어떤가. 청와대 인사수석이라는 분이 '(공기업 사장들 중)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사퇴를 종용하는 상황에서 케렛 사장 같은 전문경영인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일 것이다. 대개 정권 창출에 기여한 낙하산 인사로 임명된 정치적인 인사들이 기껏 1~2년 임시직처럼 자리를 지키다가 정권이 바뀌기 무섭게 보따리를 싸는 게 우리 공기업 사장의 현주소다. 지난 2일 부패방지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공기업 경영실태 보고서도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도로공사 등 10여개 공기업을 정밀 조사한 결과 비자금 조성,인사권 전횡,부당 수의계약 등 내부 비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명색이 국민 참여를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현 정부에서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별 다를 바 없는 공기업의 비리와 구태의연한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공기업 사장자리 인사를 정권 창출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관료주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공기업을 지방에 골고루 나눠준다는 현 정부의 공기업 지방이전 정책부터 중앙집권적 관료정서를 물씬 풍긴다. 특히 한전 등은 공기업이지만 엄연한 상장회사인 데도 시장의 염려 등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현 정부는 공공부문의 혁신을 입버릇처럼 강조하지만 공기업도 기업인 만큼 정권의 몫이 아니라 시장의 몫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스라엘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김수찬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