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청담동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아르마니 한국 직영매장 3층 10여평에 5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몸을 부딪치며 아르마니를 기다렸다. 기자회견 예정시간인 4시30분이 지났는데도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회견을 주관한 아르마니 제품 수입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우리도 어쩔수 없다. 1,2층 매장의 상품들을 둘러보고 있으니 곧 올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기자회견 예정시간을 1시간 넘긴 5시30분. 백발의 노신사 아르마니가 여유있게 나타났다. 잔뜩 화가 나있던 기자들을 쳐다보며 "한국 기자들은 무척 진지해 보이네요"라며 조크했다. 주최측은 기자회견 내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르마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한 질문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아르마니식 의전 매뉴얼에는 '수행원의 옷차림'까지 열거돼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나이 70을 넘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는 철저하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 하루 남짓한 짧은 방한 일정에도 아르마니 매장들을 돌아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기자회견마저도 시간이 아까웠던지 단 30분으로 축소했다. 그는 명품 생산국의 지존답게 완벽하게 자신이 짠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기자들이 직접 나서 항의한 뒤에야 '엎드려 절받기식'의 사과가 있었다. 최근 백화점들은 명품관을 새로 치장하거나 짓는데 수백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열기를 반영한 상품 전략이다. 드높은 아르마니의 콧대는 바로 소비자들의 '맹목적인 명품 사랑'에서 나오는 셈이다. 아르마니의 이번 방한은 명품 생산국과 소비국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켜준 생생한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한국인에게는 '한없는 수치심'을,아르마니에겐 '흐뭇한 자긍심'을 안겨준 짧은 만남이었다는 생각이다. 주최측은 뒤늦게 "교통이 막혀 일정이 늦춰졌다"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회견을 마치고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연간 8백억원어치나 팔아주면서도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고 눈치만 보다니…." 송주희 생활경제부 기자 y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