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동차 회사들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됐으니 영업할 만합니다. 불리한 상태에서 벗어난 거죠." 칠레 수도 산티아고시 외곽에 있는 현대자동차 칠레 판매법인 길드마스터의 리카르도 레스만 사장은 4월1일로 1년을 맞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를 묻자 "경쟁의 출발선이 같아진 게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남북간 길이가 5천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칠레는 한국과 FTA를 맺기 전 이미 37개 나라와 무관세 무역을 하고 있었다. 한국은 그들이 내지 않는 6%의 관세를 물고 싸워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기업들은 그런 불리한 조건에서 벗어나 품질 경쟁력만으로 겨룰 수 있게 됐다. 관세가 없어졌지만 가격을 내리지도 않았다. 현대차 수출은 2003년 1만8백10대에서 작년 1만2천4대로 11% 늘었지만 관세 철폐로 인한 가격 인하 덕이 아니라 품질과 브랜드 가치 향상 때문이었다고 레스만 사장은 강조했다. 삼성전자 휴대폰도 칠레에서 잘 팔린다. 판매량은 2003년 20만대에서 작년에 무려 55만대로 급증했다. 모두 한국에서 제품을 가져오기 때문에 FTA 적용을 받는다. 휴대폰도 관세 철폐분만큼 가격을 낮추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관세 6%를 안내면서 비용이 절약되자 다른 나라 휴대폰과 똑같이 판매조직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삼성 휴대폰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경쟁사보다 앞서기 때문에 관세 조건이 같아지자 더 잘 팔리게 된 것이다. 이 회사 홍성직 부장은 "1·4분기 중 노키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품질과 마케팅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관세 조건이 같아짐에 따라 한국의 대 칠레 수출은 지난해 6억9천6백만달러로 FTA가 없었던 2003년보다 37.7%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2.98%에서 3.1%로 높아졌다. 농산물 수입은 당초 우려와 달랐다. FTA가 발효된 작년 4월부터 올 2월까지 11개월 동안 수입한 칠레 농산물은 2천5백44만달러로 전년의 같은 기간보다 29.2% 늘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수입이 배 이상 늘어난 포도주를 빼면 증가율은 2.7%에 그친다. 라울 캄푸사노 칠레외교관학교 교수는 "한국과 칠레 양국은 FTA 1년을 맞아 남미와 아시아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서로를 돕는 교역 파트너로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티아고(칠레)=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