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명품 이야기 ‥ 하창조 < ENI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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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조 < ENI 대표 cj@enicorp.biz >
20∼30년 전 장안의 멋쟁이들은 명동으로 갔다. 유행이 시작되고 유통되는 명동에서 뭔가를 산다는 건 즐겁고 뿌듯한 일이었다. 당시 반도패션이나 뼝뼝의 옷,금강과 에스콰이어의 구두·핸드백은 명품이었다. 백화점이 늘어나면서부터는 부티크란 이름의 작은 의류업체와 살롱화란 수제 구두업체들이 입점,백화점의 후광을 업고 고급브랜드로 떠올랐다. 백화점에서 브랜드를 만들어주고 굳혀주고 기업으로 키워준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다른 유통업체와의 차별화가 강조되면서 백화점마다 해외업체들을 유치하더니 어느새 매장의 가장 좋은 위치는 해외브랜드군이 다 차지했다. 그동안 백화점에서 키워준 우리 브랜드들은 수익성이 적은 자리로 밀리고,그러다 보니 매출은 줄고 업체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한 백화점의 명품관 개점을 두고 논란이 많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물론 해외 유명백화점 대부분이 1층의 가장 좋은 위치에 명품 매장을 배치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백화점에 명품관이 늘어나는 걸 탓할 순 없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세계화에 발 맞추는 정도를 넘어 세계 최고라고 할 만큼 넓은 면적을 할애한다.
그런데 그 화려한 명품관에서 우리의 상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백화점의 국내 상품에 대한 태도와 상관이 있다 싶다. 백화점마다 외국브랜드에 대해 매장 고급화 등을 내세워 당장 매출이 저조해도 향후 매출신장이 기대된다는 명목으로 좋은 대우를 해준다. 반면 국내업체에 대해선 원가계산서까지 요구하며 가격조정을 시도한다.
제조업체가 하나의 상품을 내놓자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뒤 그 경험을 토대로 완성도 높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영업에 실패한 상품은 재고라는 이름으로 손실을 주지만 그 역시 소비자 호응도가 좋은 상품의 토대가 된다. 원가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들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 상품의 원가를 정확히 산출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납품업체에 대해 협력업체라는 표현이 맞다면 경기부진,원가상승,노사관계 등으로 가뜩이나 힘든 형편을 감안해줘야 하지 않을까. 해외 유명브랜드에 대해선 원가개념을 떠나 브랜드가치와 향후 잠재력까지 인정하면서 국내업체에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건 너무한다 싶다. 하나의 브랜드가 성장하자면 백화점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어렵더라도 우리 상품이 세계적 브랜드가 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