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 연세대 교수ㆍ경제학 > 새 경제부총리가 역점을 둬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살아나고 있는 내수의 불씨를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데 대해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새 부총리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기존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단기적 내수회복이 '기존 정책기조'의 전부일 수는 물론 없다. 추측컨대 내수 회복에서 나아가 본격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것을 '기존 정책기조'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성장에 역점을 두는 것이 현 정부의 '기존 정책기조'인가.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동반성장'이지 않은가. 그리고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는 속에서 단순한 성장보다 동반성장이 당연한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예상외로 간단하다. '단순한 성장'과 '동반성장' 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성장이 바로 양극화를 극복하는 주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일자리 창출'이 있다. 일자리 창출은 성장에 의해 이뤄진다. 일자리를 동반하지 않는 성장도 있지만 이 문제는 지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중소·벤처기업,부품·소재산업,서비스산업 중심의 성장을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수십만개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사라졌다. 거기에서 나온 인력은 주로 소매업,음식·숙박업 등 영세자영업자로 전환됐다. 현재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없이 취업자의 35%가 자영업자라는 것,그리고 2000년부터 2004년 사이에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이 18%나 감소했다는 것은 그 많은 부분이 '잠재 실업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양극화현상은 무엇보다 이런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동반성장'의 지름길인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비정규직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자리가 늘어나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고 그 결과 근로자의 교섭력이 올라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일본에서 1920∼1980년대에 종신고용이 가능했던 것,그리고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에서 비슷한 관행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고도성장에 힘입은 것이다.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세계화와 정보화,그리고 중국의 등장도 그렇다. 그런 조건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은 승자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기술력을 가진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동반성장'의 중요한 방법이다. 물론 일자리 창출만으로 '동반성장'이 다 되지는 않는다. 기초생활 보장 등 사회안전망 확충,부동산 투기 근절,빈민층 교육기회 확대 등도 당연히 그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 성장만 믿고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 자체를 소홀히 할 수도 물론 없다. 그러나 이들 어느 것보다 일자리 창출이 먼저다. 일자리 창출 같은 '보편적' 과제가 유독 개성이 강해보이는 현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보아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1997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체제 변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해결하지는 못한 과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위기 이후의 체제 변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역사적' 과업인 것이다. 이것이 현 정부가 2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도출한 결론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굳어졌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새 부총리의 취임이 그러한 '기존 정책기조'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