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조 < ENI 대표 cj@enicorp.biz > 봄이다. 부쩍 늘어난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지난해 딸을 결혼시키면서 시부모님께 귀여움받는 며느리,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되기를 기도했던 생각이 난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직장생활까지 하는 딸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 걱정과 달리 딸애 부부의 사는 모습은 대견하기만 하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동갑내기 신랑은 퇴근하면 청소와 세탁을 돕고,아침에도 밥과 시원한 된장국이 최고라며 함께 준비해 식사하고 출근한다. 딸아이 결혼 전 요리를 가르치는 내게 남편은 "아내 요리솜씨가 좋으면 남자가 항상 집에서 식사하려 들어 힘드니 적당히 하라"며 딸을 위하는 건지 사위에 대한 질투인지 모를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먹으면서 정든다는 옛말도 있지 않느냐"며 "주부가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할 때 가족들이 그 마음을 느끼고 맛있게 먹으면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혹 주부를 일컬어 '솥뚜껑운전사'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책임지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즘 자녀를 결혼시킨 사람에게 "아이들 잘 살지요"라고 인사하면 실례일 만큼 이혼이 잦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자들의 이중적 사고와 태도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물리적 힘 위주의 산업사회와 달리 정보화사회는 창의력과 섬세함이 중시된다. 따라서 여성인력의 활용 없이는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이 어렵다. 많은 남성들이 이같은 시대적 당위성을 인정하고 맞벌이 아내를 원하기도 하지만 정작 생활 속에서는 가부장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갈등과 충돌을 빚는다. 일하는 여성의 경우 가뜩이나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집안일까지 전담하자면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내는 지쳐도 쓰러지지 않는 사이보그인 줄 아는 모양이다. 남편이 바깥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힘든 아내의 고충을 생각해서 가사를 거들어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늘고,그렇게 되면 세계 최고 운운하는 이혼율도 줄지 않을까. 유홍준씨의 '완당 평전'엔 추사 김정희의 이런 한시가 나온다. "죽을 때가 되어 생각해보니 가장 가까운 벗은 마누라와 자식과 손자이고,가장 좋은 음식은 김치와 깍두기와 산나물이었다." 평생 사랑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누구나 미래를 걱정하지만 사실 오늘은 어제의 미래다. 어젯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잠든 부부는 오늘 행복하다. 부부가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가정이야말로 우리와 후세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