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그리스식 결혼식과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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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 소설가 >
'사실대로 말하자면,난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졸립다구.언제나 꼭 그렇단 말이야.'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졸립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화자는 결혼식 피로연을 겸한 테이블 앞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 수도 없을 만큼 쏟아지는 졸음에 사로잡혀 있다.
이렇게 졸린 건 일시적인 증상이 아니라 결혼식 때마다 반복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다.
작가는 그 졸음에 잠재의식적 요인이 개입돼 있다는 암시를 풍기는데 결혼식장의 천편일률적인 진행절차도 한몫 거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얼마 전 나도 후배의 결혼식장에서 이와 비슷한 증세를 느꼈다.
식권 표를 들고 들어간 피로연 식당에서 꾸벅꾸벅 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거듭 하품을 삼키며 앉아 있었다.
내 졸음의 원인은 아주 명백했다.
전날 밤 창밖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버틴 탓이다.
그러니 나의 졸음은 순전히 생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결혼식장에 왔으니 국수는 꼭 먹어줘야겠다는 생각에 한 젓갈 먹다 말고 불쑥 옆에 앉은 남편에게 물었다.
"국수와 결혼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글쎄,흰 빛깔과 긴 면발 등을 고려해 볼 때 혼약의 순결함과 결혼생활의 긴 여정 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고개를 끄떡이며 "그럴 것 같네" 하고 말했다.
그 순간,작은 종지에 담긴 국수의 초라함이랄까,그런 것이 갑자기 내 가슴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결혼식 때 국수를 먹는 건 한국만의 풍습이 아닌 듯하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 여행 갔을 때 아노기아 산골마을의 전통 결혼식에 참석하게 됐는데 내가 테이블에 앉자마자 스파게티처럼 생긴 하얀 국수가 나왔다.
양념이라고는 그 위에 뿌린 양 젖으로 만든 하얀 치즈 가루가 전부였다.
하객들 모두 그 국수를 한 접시씩 비우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 결혼식에서도 국수는 빼놓을 수 없는 음식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공장에서 기성복처럼 찍어내는 것 같은 한국식 결혼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리스 전통 혼례방식이 꽤 흥미로웠다.
낮부터 모여든 하객들과 친척들의 군무,부케를 든 신랑을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 중간에 있는 오래된 교회당까지 함께 걸어간 일,그리스 정교회식으로 엄숙하게 거행된 결혼식과 혼인서약을 마친 신랑 신부에게 흩뿌려지던 쌀과 장미꽃잎들은 참으로 인상 깊은 장면들이었다.
피로연은 그야말로 온 마을이 어우러진 한바탕 축제였다.
마을을 관통하는 중앙대로까지 막아놓고 논에 모를 심은 듯 좌악 펼쳐놓은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새카맣게 앉아 있었는데 총 인구 3천명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나 싶었다.
차려놓은 음식 가지 수는 많지 않았으나 양만큼은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했다.
결혼식 날 양을 몇 마리 잡았느냐 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큰 자랑거리인데 신랑 집 앞에 서 있던 두 대의 8t 트럭에는 장작불에 구운 양이 2백마리나 들어 있고 작은 동산처럼 쌓아놓은 수박과 페트병에 담은 포도주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치열한 저항의식으로 2차대전 당시 몰살 위기까지 갔던 이 마을의 한 맺힌 사연은 크레타 섬 특유의 광적인 기질과 함께 구슬픈 '릴리' '라우또' 선율에 녹아 흐르고 있었는데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앤터니 퀸이 추었던 '벤도잘리'의 광기어린 춤과 어우러져 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내가 후배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리스 식 결혼장면을 떠올린 것은 작은 종지에 담긴 국수의 궁색한 존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속도'가 키워드인 산업사회에서 농업과 목축업이 주업인 아노기아 마을 전통혼례의 느린 속도와 풍성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결혼식을 향해 전력 질주한 신랑 신부의 정신적 물질적 수고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보아왔던 지리멸렬한 요식행위로 밖에 안 느껴진다면 그건 좀 억울한 일 아닌가.
'빨리빨리'도 좋고 편리함도 좋지만 때론 두번째 인생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결혼식의 신성함이,그 축제의 흥겨움 같은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