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 워싱턴의 지하철역에서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휴대폰으로 약혼자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체포된 적이 있다. 이 여성은 "낮은 소리로 얘기하라"는 경찰의 제지를 무시하고 대들었다가 결국 재판에 회부됐다. 죄명은 '공공의 평화를 해친 죄'였다. 법집행이 단호한 싱가포르에서는 노약자석에 앉기만 해도 벌금을 물릴 정도라고 한다. 지하철 역사가 오래된 도시일수록,또 선진사회일수록 지하철 에티켓은 엄격한 편이다. 역구내나 열차의 좁은 공간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까닭에 어느 공공장소보다 에티켓이 강조되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1974년에 개통된 서울지하철을 비롯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지하철이 운행되면서 이미 지하철시대로 접어들었다. 서울의 경우 하루 평균 지하철 이용객이 4백50만명이라고 하니 지하철은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 지하철은 깨끗하고 빨라 외국 관광객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부끄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청소년들의 지나친 애정표현,빈 자리가 생기면 몸을 던지는 아줌마들,코를 골다 못해 아예 드러누워 잠자는 아저씨들,치마입은 아가씨의 다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이같은 볼썽사나운 작태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나 몰라라'하는 경망스런 행동들이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해 서울시의 조사를 보면,수도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역시 지하철의 공중 에티켓을 '가장 개선이 필요한 점'으로 꼽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엊그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발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위 '지하철 4대 공공의 적'으로 짝벌남(다리를 짝 벌리고 앉는 사람),펼칠남(신문을 두 손으로 펼쳐 보는 사람),추접남(이성의 신체에 접촉하는 사람),몰상남(성추행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을 지목한 것이다. 도시의 지하철은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발에 다름아니다. 이런 전동차 안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하루가 더욱 피곤할 따름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