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인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ihsong@kesco.or.kr >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IMF 외환위기 직후 34조원 안팎이던 기업의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 올 초에는 두 배로 늘어 7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재계는 투자 부진의 주요 원인이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나 유효했던 정부의 규제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은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이윤을 얻는 효과적인 경제운용의 기제다. 한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 가전제품에서 이동통신으로 투자처를 바꾸면,다른 기업이 가전제품 분야를 맡아 새로운 제품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자유기업과 시장의 창조적 활동이다. 그러나 시장이 모든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자유경쟁 아래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만 기업에는 수익성이 없는 일정한 상품과 서비스가 있으며,초기의 완전 경쟁이 과점내지 독점으로 귀결돼 과다한 이윤 산출과 품질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런 근거로 정부는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시장경쟁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규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공기업이 의미를 갖는 것 또한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정책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민간 기업은 최저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장 경쟁에서는 예컨대 사업장 내 전기,가스 등의 설비에 대한 안전 관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줄여야 할 비용으로만 간주될 뿐,종업원이나 주민들을 포괄하는 사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되기는 어렵다. 바로 여기에서 비용이나 이윤을 고려하기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안전설비에 대한 규제 차원의 검사라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국가에서 국가행정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안전은 우리 사회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가치로 존중돼야 한다. 우리가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경쟁의 강화에 찬성하면서도,이에 주의를 기울여 진정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규제완화라는 명목 아래 다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촉진과 성장을 위해 풀 것은 풀어야겠지만,묶을 것은 계속 묶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