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윤원 중앙대 교수ㆍ행정학 > 정부는 부처의 수행기능이 이질적이고 업무량이 방대해 심도 있는 정책결정과 효율적인 기관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정경제부,외교통상부,행정자치부,산업자원부 등 4개 부처에 복수차관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들 부처는 이른바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의 행정개혁 추진 과정에서 업무의 이질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무리한 부처통합을 시도한 점이 없지 않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극심한 부처 내 갈등 등 효율적인 관리의 어려움에다 정책품질 향상을 위한 제도적 보장을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대안이 복수차관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차관제가 정부 비대화와 여권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임명을 위한 위인설관(爲人設官) 등을 지적하면서 반대하는 여론 또한 적지 않다. 이 점에서 복수차관제 도입은 감정적 찬반보다는 합리적 실익을 따져보고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먼저 필자는 친분이 있는 모 부처 전직 차관의 하루 일정표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거의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빼곡하게 공식회의와 외부행사로 잡혀있었다. 그가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에 전념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며 심도 있는 정책구상이 언제 이뤄질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부처의 차관은 장관을 보좌해 한 부처의 정책방향을 이끌어 나가고 새로운 정책구상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이다. 부처 내 주요 실무적인 정책사안을 모두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장관을 대신해 각종 정책회의나 행사 등에 참석,부처의 최종 결정자 역할까지 하게 된다. 따라서 지나치게 방대한 부처는 업무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복수차관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지난 10년여간 행정 개혁을 추진하면서 무리한 부처통폐합과정에서 야기돼 온 이질적 출신부처간 갈등은 너무 골이 깊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보다 전반적,합리적 부처 재편성이 없는 한 업무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이 복수차관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반대논리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로서 우선 정부 비대화에 대한 우려다. 복수차관제는 지난 10년여 동안 정권을 초월해 어렵사리 이뤄낸 '작은 정부-큰 시장'의 기본 틀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또 여권 인사들의 논공행상적 위인설관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자칫 정무차관과 행정차관으로 나누어 정무차관을 정치인으로 보임하는 경우를 초래할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 따라서 이 제도의 도입은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잘 검토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치적 악용을 우려해 무조건적이고 감정적인 반대로 복수차관제의 진정한 취지마저 상실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일이다. 가장 나쁜 형태로 악용될 경우만을 전제로 해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한다면 자칫 중요한 정책이나 구상도 탄생하기 어렵게 되고 소기의 성과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선 4개 부처로 시작해 향후 모든 부처에 확대시켜 그야말로 정부 비대화를 초래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여권주변 정치인들을 위한 위인설관에 대한 우려는 철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복수차관제는 행정현장에서 제기된 정책문제이긴 하지만,지금까지의 행정개혁과정의 부정적 부산물이기도 하다. 진정한 행정개혁은 일회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되 '잘못된 개혁에 대한 개혁'까지를 포함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복수차관제는 도입하되,예상 문제점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제도의 취지를 살릴 기회도 없이 오로지 반대만을 고집하는 것은 반드시 능사가 아닐 것이다. /前한국행정연구원장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