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동력 지역에서 찾는다] (5) CEO형 단체장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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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세계적인 자동부품 업체인 보쉬와 손학규 경기도 지사가 이끄는 외국기업유치단간의 투자협상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경기도청 외자유치팀과 함께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지부의장,현대자동차 구매담당 임원이 동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방정부+기업+노동계' 3자 합작 외자유치팀은 손 경기지사의 아이디어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들을 주저하게만드는 한국의 노조의 강성투쟁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보쉬의 단골 대량거래처인 현대자동차의 "바잉 파워(구매력)"을 배합하면 보쉬의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주효할 것이라는 손지사의 착안은 적중했다.
당초 2억달러 규모의 공장을 중국에 세울 예정이었던 보쉬는 이 상담을 계기로 경기도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지사팀은 유럽 5개국 '투자유치 투어'를 통해 2억2천만달러 규모의 외자를 유치했다.
손 지사처럼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마치 그룹기업의 CEO(최고경영자)처럼 지역경제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김현호 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국경과 국적이 사그라지는 글로벌경제시대가 열리면서 지역경제 및 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갈수록 약화돼 단체장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에 따라 도시 및 지역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결정짓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단체장들이 앞장서고 중앙정부는 장기비전 및 지역경쟁력 평가 등 이선으로 물러서는 추세"라면서 "한국도 단체장들이 기업가 정신으로 지역경제 살리기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요컨대 대통령이 그룹회장 역할을 하고 단체장들이 그룹계열사 사장들처럼 뛰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
손 지사는 "지방은 민선 3기에 접어드는 동안 나름대로 경험과 노하우를 쌓으면서 앞장서 뛸 태세를 갖췄는 데도 중앙정부가 아직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CEO형 자치단체장들의 성공스토리가 여러 지방에서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고문인 김혁규 전 경남지사도 CEO형 단체장의 전형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지사 재임기간 중 경남 진사공단을 외국인투자유치의 모델로 만들어 다른 지자체들의 학습대상이 되기도 했다.
'낙후·미개발'로 상징되는 강원도의 이미지를 '청정·친환경'이미지로 바꾼 역발상으로 바이오(춘천),의료(원주),신소재(강릉) 산업에 도전한 김진선 강원도 지사도 CEO형 단체장의 전형으로 꼽힌다.
기초단체장 중에서는 '나비축제'로 전라도 산골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이석형 함평군수,판타스틱 국제영화제로 자생적 중소공단도시 이미지를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원혜영 전 부천시장,남해를 스포츠 겨울 훈련장의 명소로 부각시킨 김두관 전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타고난 일꾼들 이외에 전국적으로 CEO형 단체장의 등장이 대세라고 하기엔 아직 멀었다.
"국내 2백50개 지자체 리더 중에서 기업가형은 10% 남짓으로 파악되고 있다."(박재영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지방분권팀장)
민선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치단체장들을 여전히 관리형 행정가로 머물게 하는 이유는 뭘까.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아직까지 자치단체장에게 충분한 자율권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며 "중앙정부의 획기적인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연초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정부가 조세(재원)를 너무 움켜쥐고 대추놔라 밤놔라 하는 식으로 일일이 간섭하는 중앙통제식 행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넘치는 아이디어와 활력이 구체화 내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역이 마음껏 뛰도록 하고 정부는 사후평가 및 장기전략으로 뒷받침하는 선진국형 행정시스템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대통령+중앙부처(각료)'가 이끌어온 '한국(韓國)그룹'을 '대통령+광역단체장' 주도형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무회의 처럼 '단체장 회의'를 정례화해서 대통령이 그룹회장 역할을 하고 단체장들이 계열사 사장역할을 맡으라는 얘기다.
이석형 함평군수는 "지방으로 권한이 넘어가고 재정 자립기반이 갖춰지면 현재 지역 리더들의 가장 큰 고심거리인 인재난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주민과 지역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자치단체장을 중도 하차시킬 수 있는 주민소환제가 필요하다"며 '외부평가를 통한 경쟁촉진의 시스템화'를 제안했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프로스포츠로 치면 그동안 감독 코치 공격수 수비수 역할을 몽땅 수행했던 중앙정부는 이제 '구단주를 겸한 치어리더' 내지는 '그룹 구조조정본부' 역할만 하고 단체장들을 뛰게 한 다음 평가를 공개함으로써 경쟁을 촉진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