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소기업계의 화두는 단연 '혁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소기업 정책 자체를 혁신하고 3만개 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부는 '혁신주도형 중소기업 정책'을 모토로 내건 '1.17 대책'를 발표했다. 이번 대책과 후속조치들이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들을 어떻게 혁신으로 이끌 것인가에 중소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2일로 개청 9주년을 맞은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최근 과천에 있는 서울중기청 2층 청장실에서 중소기업계의 현재 상황과 '1.17 대책',혁신형 중소기업 발전방안 등을 짚어보는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성진 중소기업청장 □박희재 서울대 교수(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 □이재영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협회) 회장 □장지종 기협중앙회 부회장 □사회=이치구 한국경제신문 부국장 ------------------------------------------------------------------------ ○사회=올 들어 코스닥시장이 활황세를 타고 있고 민간 소비가 완만하게 회복될 조짐을 보이는 등 국내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상황은 어떤가. ○장지종 기협중앙회 부회장=최근 우리 경제에 일부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고유가와 원자재가격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 등 경영 애로요인이 지속되고 있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제조업 가동률은 60%대에 머물러 있고 중소기업인들의 체감경기 역시 살아나지 않고 있다. 다만 올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기업인들은 많아지고 있다. ○이재영 이노비즈협회 회장=전체적인 실물경기 흐름에서 큰 변화는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잇따라 발표된 이후 투자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노비즈협회에 속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경기가 하반기부터 확실히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박희재 서울대 교수=반도체나 LCD,휴대폰 관련 중소기업들은 올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삼성 LG 등 대형 메이커들이 대형 프로젝트를 미루지 않고 관련 장비나 부품에 대한 주문을 예정대로 내보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사라졌다. ○사회=경제 분위기가 다소 좋아지고 있는 데에는 지난해 말 발표한 벤처활성화 방안,노 대통령의 잇단 '경제 올인 의지' 천명,'1·17 대책' 등이 일조하고 있다. '1·17 대책'이 이전의 중기정책들과 차별화되는 혁신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김성진 중소기업청장=중소기업의 근본적인 자생력 배양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정책의 중점을 뒀다. 다만 혁신형 중기에 대한 정책자금 집중지원,공고 졸업생의 중기 취업 지원 확대 등의 정책을 통해 담보위주 대출관행이나 구조적 인력난 등으로 중소기업이 현재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시장실패를 일부 보완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소기업 중기업 등 기업유형별로 차별화된 맞춤형 지원책을 대폭 강화한 것도 이번 대책의 특징이다. ○장 부회장=3만개 혁신형 중소기업과 부품 및 소재산업 육성,기술인력 공급 확충,정책자금 지원방향의 명확한 설정 등은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고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중소기업들은 금융권 등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보증이 축소되면 사업영위마저 위태로워질 위험성이 크다.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일반 중기에 대한 신용보증 공급은 확대하거나 최소한 유지돼야 한다. ○사회=지난해 발표된 '7·7 대책'에 이어 이번 대책의 큰 맥락은 선택과 집중에 의한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혁신형 중소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을 일컫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김 청장=혁신형 중소기업이란 일반적으로 첨단·고도기술을 가진 제조업체와 산업연관 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체로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하고 미래 성장과 고용창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말한다. 중기청은 지원의 효율성을 위해 벤처인증제도가 올해 말로 폐지됨에 따라 기존의 벤처와 이노비즈적인 요소를 조화시킨 새로운 인증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또 서비스 유통 컨설팅 등 비제조업 분야에서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도록 마케팅 생산성 향상 등에 대한 혁신형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장 부회장=선진국에서는 정부가 기업을 벤처나 이노비즈로 지정해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는 사례가 거의 없다. 정책의 큰 흐름이 '직접 지원'에서 '간접 지원'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의 편의을 위해 장기적으로 국가적인 인증제도를 계속 끌고 가는 게 바람직한 방향인지 모르겠다. 시장에서 기술력과 경영성과를 평가해 혁신형 기업을 가려내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 회장=지난 99년부터 시행된 벤처인증제도는 공과가 있지만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자원이 부족한 국내 현실에서 혁신을 가름하는 우선적인 기준은 역시 기술이다. IT나 유비쿼터스 등 성장가능성이 큰 분야에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을 인증해 확실하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 교수=대학들도 현재 학교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치기 위한 전략으로 국제기관의 각종 평가인증을 받기 위해 힘쓰고 있다. 기업들의 동기 부여와 브랜드마케팅 활용 차원에서도 공신력 있는 인증제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 ○사회=앞으로 집중 육성되는 혁신형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정책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가. ○박 교수=혁신형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술의 관념과 방식을 획기적으로 돌파하는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산학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중소기업들에는 고급 기술인력이 태부족한 반면 대학이나 연구소에는 아직까지 숨겨진 '진주'들이 많다. '진주'들을 찾아내 산업현장과 연결시켜 이들이 중기의 기술혁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회장=기술혁신을 위한 산학협력에는 중소기업과 대학 및 연구소뿐 아니라 대기업들이 참여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통신 등 일부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중·소기업 협력이 전 부문으로 확대돼 구체적인 성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노비즈의 경우 지속적인 기술혁신 강화와 글로벌 마케팅 활성화를 통해 전문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하는 육성책이 필요하다. ○장 부회장=혁신형 중소기업들이 각종 지원을 받아 좋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팔지 못하면 주저앉고 만다. 시장 개척 단계에서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들이 이들 회사의 제품을 구매해 주는 등 다양한 판로 확대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 ○김 청장=자금과 기술 판로 등에서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적용,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1조원 규모의 중소기업모태펀드를 조속히 조성해 올해부터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 신기술 제품에 대한 공공기관 의무구매를 확대하고 구매 활성화를 위해 오는 7월 신기술성능보험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지방 중소기업과 지방 대학이 맞춤형 산학협력을 통해 기술 인력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도록 교수연구실과 실습실을 산학협력실로 활용하고 연간 5천만원의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하겠다. 또 이번 좌담회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 대책을 보완해 보다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