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채용비리사건을 계기로 권력화 특권화된 우리나라 대기업노조의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막강한 힘을 과시하며 도덕불감증에 걸린 노조가 직원 채용에까지 개입하며 돈을 받아 챙긴 데 대한 비난이다. 노조가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으며 권력을 누려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는 노조는 파업을 벌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사용자들에게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존재다. 더욱이 아무때나 막무가내식으로 파업을 벌이는 우리나라 노동 현실 속에선 노조는 커다란 장애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채용,전환배치 등 경영사항과 관련해 노조 간부들이 개별적으로 부탁하면 회사측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들어주고 있다. 얼마 전 만난 모 대기업 노조위원장은 회사측에 자신이 낸 경영아이디어를 실행하도록 '지시'했다며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노사현장의 지배구조가 노조쪽으로 기운 데는 정부나 정치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정부는 개별 노사분규가 터지면 "감 놔라,배 놔라"하며 개입하기 일쑤다. 지난 98년 현대자동차에 정리해고문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빚어졌을 때,DJ정부가 당시 노무현 국민회의(2000년 1월 민주당으로 명칭 변경) 부총재를 단장으로 하는 중재단을 현지에 급파해 문제를 해결한 사건은 정치권이 노사관계에 개입한 대표적 사례다. 당시 현대차노조가 정리해고에 반발하며 불법파업을 벌이자 사법당국이 공권력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중재단이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권력 투입 연기를 요청한 뒤 회사측에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회사측이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때 노사 자율로 문제가 해결됐으면 현대차 노사 관행은 크게 개선됐을 것이라고 노동전문가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2003년 2월에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분신 자살한 뒤 노사 갈등이 확산되자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명분 아래 회사측에 '압력'을 가해 양보를 받아내기도 했다. 현대차나 두산중의 사례에서 보듯 결국 정부나 정치권이 법과 원칙 없이 노사관계에 개입해 정치적으로 문제를 봉합하다보니 노동운동이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성에 젖게 된 것이다. 내 몫만 챙기려는 '그들만의 노동운동'도 결국은 정치권과 정부가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군림하는 노조'를 '선진 노조'로 바꿀 방법은 없는가. 물론 있다. 법과 원칙의 철저한 적용이다. 노조의 파업에 대해 무노동무임금 적용과 손배·가압류 등으로 대응한 사업장들은 1백80도 달라진 노사관계 풍토에 하나같이 놀라워하고 있다. 매년 협상철만 되면 노조의 장기 악성파업에 골머리를 앓던 현대중공업은 94년 무노동무임금 적용 후 10년째 무분규를 이어오고 있고 지난해 파업을 벌였던 LG칼텍스정유 서울지하철 노조도 법과 원칙 앞에 무릎을 꿇은 케이스다. KT 태광산업 두산중공업 등도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뒤 정신을 차린 사업장들이다. 노조가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파업을 벌이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뿐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선 조합원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엊그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기아차사태와 관련,국민 앞에 사과하며 자정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위원장 약속 한마디로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노사관계가 정상화되려면 노동계 사용자 정부 모두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길뿐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