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동조합 간부가 생산직 사원 채용과정에 개입해 거액의 금품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노조가 지나치게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아 노조의 과도한 권한 행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97년 기아자동차가 부도를 내고 쓰러졌을 때도 전문가들은 노조의 지나친 경영권 침해가 회사 부실화에 큰 부담이 됐다고 입을 모았었다. 기아 노조의 이 같은 관행은 현대자동차로 인수되면서도 전혀 시정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기아자동차 노조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라인스톱제도. 이는 근로자가 산업재해의 위기에 놓였거나 제품 생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 스스로가 라인을 멈출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의 취지가 어긋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화성 공장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3개 라인에서 오피러스 쎄라토 쏘렌토 등을 생산하는 화성 공장에서는 이틀이 멀다하고 라인이 멈추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며 "안전 문제보다는 노조의 전략과 노조 간부 개인의 감정에 따라 라인 가동을 멈추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데 이 제도를 악용해온 셈이다. 라인이 서게 되면 다시 공장을 가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시간. 결국 심각한 손실을 봐야 하는 회사로서는 늘 노조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 초 1천여명의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회사측이 4백여명의 부적격자를 파악하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도 정규직 전환을 미루면 라인을 세워버리겠다는 노조의 으름장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기아차 노조가 회사 경영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채용 공고가 날 때마다 취업 희망자들이 노조 간부에 줄을 대려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작년 5월 기아차 광주공장이 채용공고를 낼 때도 실력있는 노조 간부에게 2천만∼3천만원을 주면 취업할 수 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나돌았다. 기아차는 △공장 이전 및 통폐합 △지점 폐쇄 및 통폐합 △라인 이전시 인력 운용 방안 △신차종 신기술 신기계 도입으로 인한 작업환경 변경시에도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라인 전환 배치나 혁신 활동 조차도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다. △휴일 특근 결정 △근무지 변경 △작업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시설 사항도 사전에 협의하도록 돼 있다. 징계위원회도 노사 동수로 구성토록 돼 있는 상황이어서 회사에 심각한 손실을 입힌 노조원에게 징계를 가하려 해도 노조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불합리한 관행과 단체협약을 바로 잡으려 해도 옛 기아 시절의 관행이 너무 뿌리가 깊었다"며 "오히려 이번 사태가 노조의 관행에 새로운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파업의 조기 종결을 위해 회사의 양보만을 강요해온 정부의 잘못도 크다"며 "일부 대기업 '귀족 노조'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