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현장에서 경비를 서다가 저격범 문세광의 팔에 수갑을 채웠던 전직 경찰관 A씨(당시 순경)는 사건발생 30년이 지났지만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A씨는 사건 당일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린 장충동 국립극장의 출입문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인 만큼 경찰은 출입문에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한 가운데행사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삼엄한 주변 경계를 펼쳐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 10시 기념식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안에서 몇발의 총성이울려퍼졌고, 곧이어 실신한 양복 차림의 문세광이 4∼5명에게 들려 나왔고 총상으로숨진 여고생 장봉화 양도 함께 사람들에게 업혀나와 앰뷸런스에 실렸다. A씨는 "문세광의 사지를 든 사람들은 사복을 입고 있어서 경찰관인지 중앙정보부쪽 기관원이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며 "문세광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권총 손잡이로 문세광의 머리를 때려 실신시켰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기억하는 당시의 문세광은 키가 170㎝ 이상으로 큰 키였고, 살이 찐 편이어서 체구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실신한 문세광은 별다른 외상은 없었으며 을지로의 국립의료원으로 후송됐다. A씨는 후송 직후 문세광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는 "문세광이 체격이 컸을 뿐만 아니라 특히 팔뚝이 굵어 수갑이 잠겨지지 않았을 정도"였다며 "그는 수갑을 찬 채 국립의료원 응급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고기억했다. 삼엄한 경비에도 문세광이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A씨는 "중부서 정보과장이 정문 경비를 맡았는데 어떤 사람이 일본말을 하니까 일어를 모르는정보과장이 신원확인을 위해 행사장 안으로 데려간 것으로 안다"고 회고했다. A씨는 "그러나 이 수상한 `위장 일본인'을 계속 주시했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박 대통령이 때마침 도착해 우왕좌왕한 틈을 타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 여사는 피살 직후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숨을 거뒀고, A씨는 이날 밤 청와대의 `호출'을 받은 김원모 중부서장과 정보과장을 차로 청와대까지데려다 주고 돌아왔다는 것. 결국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김 서장은 파면됐고, 정보과장은 구속됐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