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발생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저격사건의 전모가 20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저격범 문세광의 사건 모의에서 박 전 대통령 저격, 문세광의 재판 과정등을 일지로 정리한다. ▲1972.9.3 = 문세광, 오사카 패스티벌홀에서 열린 단합대회 때 김호룡 접촉 ▲1972.9.5 = 문세광, 조총련에 포섭 ▲1973.9 = 문세광, 김호룡의 암살 선동으로 대통령 저격 결심 ▲1973.11 = 3ㆍ1절 기념식때 암살 지령, 홍콩서 무기구입 실패로 범행 포기 ▲1974.2.12~3.11 = 문세광, '川上勇治'라는 가명으로 赤不動병원 입원해 주체사상교육 ▲1974.5.4 = 만경봉호에서 신원미상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암살 지령 ▲1974.5.5 = 만경봉호에서 북한 공작원(김호룡 등 2명)으로부터 암살 지령 ▲1974.7.18 = 오사카 高津파출소 침입, 권총 2정, 실탄 10발 탈취(미제 권총 1정과 실탄 5발 저격에 사용) ▲1974.7.24 = 김호룡, 문세광에게 공작금 80만엔 전달 ▲1974.8.6 = 문세광, KAL기편으로 일본서 입국, 조선호텔 1030호 투숙 ▲1974.8.15 = 문세광, 국립극장서 열린 광복 29주년 기념식서 박정희 전대통령저격. 육영수 여사 운명. 장봉화(17.성동여자실업고 2년)양 사망 ▲1974.8.15 = 특별수사본부(본부장:김일두 서울지검장) 설치 ▲1974.8.17 = 특별수사본부, 문세광 북한공작원 지령으로 범행 자백 발표. 문세광 구속수감 ▲1974.8.19 = 육영수 여사 국민장 엄수, 국립묘지 안장 ▲1974.8.19 = 다나카 일본수상, 조문사절로 장례식 참석 ▲1974.8.24 = 국가보안법 위반등 13가지 죄목으로 문세광 서울지검 구속 송치.김호룡과 일본인 2명 공범 입건 ▲1974.8.24 = 김종필 국무총리, 다나카 수상에게 수사협력 요구 친서 전달 ▲1974.8.27 = 수사본부, 수사자료 일본경찰에 통보(수사협조 요청) ▲1974.8.30 = 박정희 대통령, 일본에 저격사건 제반 조치 촉구 강력 경고 ▲1974.9.6 = 광복회원 200여명 주한일본대사관 난입 ▲1974.9.11~12 = 부산주재 일본총영사관 및 총영사관 관저 난입 ▲1974.9.12 = 수사본부, 문세광을 내란목적의 살인죄 등 6개 죄목 구속 기소 ▲1974.9.19~20 = 시이나 에쓰사부로(자민당 부총재) 일본특사 방한 ▲1974.10.7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8부, 문세광 첫 공판. 범행사실 인정 ▲1974.10.14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8부, 결심공판. 사형구형 ▲1974.10.19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8부, 선고공판. 사형 선고. 문세광 서울고법에 항소 ▲1974.11.13 = 서울고법 제2형사부 항소심 첫 공판. 사형 구형. 문세광 "박대통령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죄송하며 지은 죄를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최후진술 ▲1974.11.20 = 서울고법 제2형사부 항소심사 및 공판. 항소기각, 사형선고 ▲1974.12.17 = 대법원 제1형사부 상고심 판결공판. 상고기각, 사형 확정 ▲1974.12.20 = 문세광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