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前) 총서기(85)가 17일 베이징 시내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서방 외신들도 자오 전 총서기가 이날 오전 7시1분(현지시간) 사망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자오 전 총서기는 지난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데 반대했다는 이유로 실각해 가택 연금 상태로 생활해 왔다. 생전에 실각과 복권을 거듭한 그가 사망 후에 복권될 지는 불투명하다. 그가 사망하자 그 파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1974년 저우언라이 총리,지난 89년 후야오방 총서기 등 개혁적 지도자들이 사망할 때마다 대규모 시위를 겪곤 했다. "중국의 경제개혁은 정치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는 지론을 펴온 자오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그와 톈안문 사태에 대해 현 지도부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가 중국 정치개혁을 가늠짓는 시금석이라는 지적이다. 자오 전 총서기는 89년 6·4 톈안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실각한 후 자의든 타의든 중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중국 최고 권좌에 올랐던 자오 전 총서기는 인생 자체가 굴곡이었다. 허난성 출신인 그는 30년대 중국의 항일전쟁 당시 공산당에 입당,신중국 건설 이후 광둥성 제1서기 등을 역임했지만 67년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했다. 이후 71년 복권돼 80년 9월 총리에 취임한 뒤 87년 당 총서기에 선출됐으며 경제개혁과 개방적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 진압을 주장하던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 등 강경파에 맞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모색하다 "당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권좌에서 축출됐다. 그가 가택 연금에 들어가자 연금 해제를 촉구하는 서한이 1백만통이 넘었고,98년에는 홍콩 인권단체에 의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천거되기도 했다.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인근 자택에 연금된 상태에서도 보수파의 대부로 재정통인 천윈의 장례식에 문상을 하는가 하면 덩샤오핑 등 지도자들도 종종 만났다. 93년 이후에는 여러 지방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지도부는 그의 사망에 일정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톈안먼 광장의 경비강화와 함께 그의 사망사실을 즉시 관영 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내보내면서도 TV와 라디오를 통한 보도는 차단하고 나선 게 이를 보여준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