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공개된 한일회담 관련 문서 중에는 당시긴장된 협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들이 눈에 띈다. 1965년 4월 3일 가조인된 `청구권 협정' 등의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외무부 본부와 주일대표부,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사이의 전보들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3월 27일 오후 6시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는 주일대표부에서 대일 협상을 지휘하고 있는 이동원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보에서 당시 국내의 한일회담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청구권 문제에 대하여 명분이 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또 이틀 후인 3월 29일 오전 10시 16분에는 이동원 장관을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장관 비서관 명의의 전보가 외무부 본부의 윤 찬 공보관 앞으로 긴급 타전된다. 이 전보에는 "외무부 윤 찬 공보관, 명(明.내일) 30일 가조인될 것으로 예상되는 청구권 문제에 있어서 3. 2. 1. 변경되는 경우에는 각사 데스크(DESK)와 접촉하여 `김.오히라 메모 사실상 백지화'라는 표제로서 대대적인 PR을 하시기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대일 협상의 지렛대로 국내 언론을 활용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이동원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그런 주문은 무위에 그친다. 이튿 날인 3월 30일 오전 9시 55분, 본부 외무차관이 도쿄에 있는 이동원 장관에게 관련사항을 보고하는 내용의 전보를 띄웠다. 전보에는 "청구권 문제 피.알에 관하여는 문제의 중요성에 관하여 고위층과 협의했습니다. 현 단계에서 `김.오히라 메모의 사실상 백지화'라고 크게 피.알할 경우에는 국내외에 불필요한 파문 및 오해를 야기시킬 염려가 있음에 비추어, 1억불 이상을 3억불 이상으로 구체화하여 청구권 문제를 유리하게 해결하였다는 식으로 피 .알함이 좋다는 결론이 있었습니다.따라서 `사실상 백지화'라고 크게 피.알하는 점에 관하여는 신중 검토후 결정코자 하오니 양승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돼있다. `청구권 자금' 명목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단 국내 언론을 활용해 대일 압박카드를 쓰겠다는 협상대표의 주문에 대해, 당시 고위층에서는 괜히 일본을 자극해 다 된밥상을 엎지 말고 상업차관 액수를 추가확보하는 것으로 면피를 하자고 한 셈이다. 31일 오후 8시 10분에는 정일권 총리 명의의 전보가 주일대표부에 있는 이동원외무장관에게 타전된다. 다음 날인 4월 1일 오전 9시 30분에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필요한 국내 절차를준비하고 있으니, 그런 전제하에 가조인 조치를 추진하라는 것이다. 또 전보에는 "합의된 문안 중의 `공여'라는 어구는 아국의 통용어가 아니므로 `제공'으로 수정하여 국무회의에 상정할 위계(계획)임. 따라서 문안을 양국어로 작성할 시에는 아측은 `제공'이라는 어구를 사용하고 일측은 `공여'를 사용하는 방편을취하시기 바라며 이 점에 관하여 일측의 양해를 얻으시기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4월 2일 오전 10시 55분 김동조 주일대사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는 "청구권 관계 합의문안 중 아래와 같은 점이 수정되었음. `무상공여'는 일측은`무상공여', 아측은 `무상제공'으로, `신용공여'는 일측은 `신용공여', 아측은 `신용제공'으로 표현함"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두달이 넘은 그 해 6월 12일 오후 7시 외무부 본부에서 도쿄에 있는 한일회담 수석대표에게 보낸 전보에는 "자금의 명목. 무상 `경제협력'의 `경제협력'은반드시 삭제되어야 하며, 기타 부분에 있어서의 그와 같은 표현도 삭제되어야 할 것임. 일측안 기본협정 전문 중의 제2단 `한국의 경제사회발전에 기여..' 운운의 표현은 곤난하다고 생각됨"이라고 일측이 집요하게 주장했던 `경제협력'이라는 표현의관철을 막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은 또 "청구권 해결에 관한 규정. 신중히 일측의 설명을 검토하고 특히소멸의 대상이 되는 청구권의 내용을 파악한 후 귀하의 재량으로 최선을 다하시기바람. 이상의 지침을 참작하시고 귀 대사가 최선을 다하여 가능한 한 조속히 타결될수 있도록 재량껏 처리하시기 바람"이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965년 6월 22일 한일회담이 타결되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