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 났습니다.더 확보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15층.LG상사 석탄팀은 한국전력 쌍용양회 등 고객사들이 시간 단위로 걸어오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주요 유연탄 공급국이던 중국이 수출 물량을 대폭 줄이자 수요업체들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한전은 전력 공급이 가장 많은 시점에 발전소 가동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LG상사도 있는 대로 다 끌어모아 보았지만 수요 물량을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수 차례에 걸친 마라톤 회의 결과 석탄팀이 내린 결론은 '호주 엔샴탄광'이었다.



< 사진 : LG상사가 지분투자한 호주 퀸즈랜드 엔샴탄광에서 근로자들이 폭파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기에 앞서 석회가루를 땅속으로 쏟아붓는 것은 토양보호를 위해서다. >


호주 퀸즐랜드 엔샴탄광은 LG상사가 5%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연산 8백만t 규모의 대규모 광산.그러나 5% 지분에 해당하는 40만t은 이미 다 들여온 터였다.


나머지 95%를 보유한 일본 에너지회사 이데미쓰와 J파워에 억지라도 부려보자는 게 회의 결과였던 셈이다.


조현용 팀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한국에 물량을 더 배정해달라는 '억지'에 가까운 요구였다.


일본측의 첫 반응은 예상대로 냉랭했다.


하지만 "장기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을 앞세운 끈질긴 설득에 일본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받아낸 물량은 지분 물량의 6배가 넘는 2백50만t.조 팀장은 "5%의 지분이 그렇게 커보인 적은 없었다"며 활짝 웃는다.


LG상사는 35% 지분을 보유한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에렐 탄광에서도 지분 물량(21만t)을 훨씬 상회하는 1백36만t을 들여왔다.


이렇게 해서 LG상사가 들여온 석탄 3백86만t은 지난 한 해 국내 전체 수요량 4천만t의 10%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해외 자원개발에 종합상사들이 뛰어든 것은 지난 80년대.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원자재 확보가 국가적인 과제로 떠오르면서 종합상사들이 해외 자원개발에 눈을 돌렸지만 과실을 따내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투자에 따른 배당금이 들어오면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배당 수익만 따지면 현대종합상사 자원개발팀은 1인당 수익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명의 자원개발팀이 지난해 거둔 배당수익은 2백50억원(추정치).1인당 62억원씩 벌어들인 셈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약 1천8백만달러를 배당받았다.


회사 당기순이익 8백19억원(추정치)의 25%에 육박하는 규모다.


오만 및 카타르의 가스전과 알제리 이사우안 유전 등 상업생산에 성공한 해외투자처에서 수 백만달러씩의 배당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특히 96년 1백60만달러를 투자해 1%의 지분을 확보한 오만가스전에서는 첫 배당을 실시한 지난 2002년 4백만달러를 보내왔다.


6년 만에 두 배 장사를 한 셈이다.


이 가스전의 배당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3년에는 7백96만달러,지난해에는 9백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지금은 탐사단계에 있지만 '대박'을 예약해놓은 광구도 수두룩하다.


미얀마 A-1가스전이 대표적이다.


60% 지분으로 운영권을 쥐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은 2009년부터 20여년간 연간 1천억원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 11-2광구에 대한 기대도 크다.


내년 10월부터 하루 1억3천만입방피트의 가스를 생산하면 적어도 20년간 4억달러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1.25% 지분이 있는 LG상사에 돌아오는 몫은 약 4천5백만달러.이 광구에는 대우인터내셔널과 현대종합상사도 지분을 4.87%씩 갖고 있어 이 회사들도 각각 1천8백만달러의 수익이 예상된다.


현대종합상사가 SK㈜와 함께 지분을 참여한 예멘 마리브 유전은 올해 광구권이 만료되지만 컨소시엄의 노력으로 예멘 정부로부터 2010년까지 연장생산 승인을 받은 상태.이에 따라 2006년부터 1백30억원 이상의 추가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현대종합상사는 가스공사가 추진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20년 장기도입 컨소시엄에 공급자로 들어가 있다.


이 컨소시엄이 한전발전자회사 컨소시엄을 물리치고 정부로부터 최종 낙점을 받을 경우 6% 지분을 보유한 현대종합상사는 또다른 '대박꿈'을 현실화할 수 있게 된다.


삼성물산이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30.8%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중국 마황산 서광구도 유망 광구여서 올 하반기부터는 상업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상사들은 잇단 성공에 힘입어 신규투자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LG상사는 당장 내달 러시아 엘가프로젝트 등 2개 광산에 대한 투자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지의 4개 광구도 경제성 여부를 따져 지분인수 등 본격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물산은 카스피해 연안과 예멘 육상광구에서 추가 석유탐사를 검토 중이다.


"해외 자원개발은 리스크가 큰 데다 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 인내가 필요한 사업이지요.하지만 작은 지분을 투자하더라도 언젠가는 대규모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만큼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광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현용 석탄팀장은 국내 종합상사들도 일본 종합상사들처럼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투자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발 노하우를 축적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일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