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80년대 막강 권력을 행사하던 서유럽 노동조합들이 최근 급격한 영향력 쇠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좇아 동유럽 등 해외로 생산시설을 잇따라 이전하고 있는데다 일반 국민들의 노조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아 노동조합들은 노동운동의 새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10일 "최근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노조 가입률이 급감하는 등 노동운동이 침체에 빠지고 있다"며 "폭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지멘스 등 독일 기업 노조가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가로 급여 삭감을 받아들인 것은 노조 권력의 약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근로자들,노조 가입 관심없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주요국의 노조 가입자 수는 최근 크게 줄었다. 영국은 지난 20년동안 노조 가입률이 50%대에서 30%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50%→35%) 독일(35%→22%) 등에서도 노조 가입률은 급격히 축소됐으며,프랑스의 경우 10% 이하로 추락해 유럽 국가들 중 노조 가입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됐다. 이런 현상은 유럽연합(EU)의 회원국 수가 25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서유럽 근로자들이 노동비용 경쟁력에서 동유럽보다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는 독일 근로자 임금의 10%만 제공하더라도 손색없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서유럽 기업들은 노조측이 노사협상에서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공장 해외 이전 등을 내세우며 노조를 압박한다. 독일 금속노조 IG메탈의 하트무트 마인 협상가는 "일자리 자체가 감소해 노조의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반 국민들,강경노조 외면=여론조사 기관 Ifop에 따르면 '노조를 믿지 않는다'는 프랑스인의 비중은 2년 전 42%에서 지난해 2월 50%로 오히려 높아졌다. 프랑스에서는 파업을 하면 게임자가 일자리 기회를 잃거나 파산하는 보드게임이 등장할 정도로 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또한 노조 가입자를 두고 '빨강 돼지'라며 비아냥거리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반노조 성향의 시민단체 '리베르테 셰리'의 사빈 에롤 대변인은 "노조는 극소수만을 대변한다"고 비판했다. ◆서유럽 노조,생존전략 모색 중=서유럽 노조들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이름을 바꾸는 등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독일에선 5개 서비스부문 노조가 부드러운 음악을 연상시키는 '베르디(ver.di)'로 통합했고,영국 엔지니어링 노조는 '아미커스(Amicus·친구)'로 이름을 변경했지만 국민들의 노조 불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IHT는 "유럽에서도 산업별 상위노조가 아닌 단위노조 차원에서의 협약이 이뤄지는 미국식 노사협상이 확산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근로시간 연장 등 회사 쪽에 유리한 형태로 협상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