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또 다른 전쟁 ‥ 지용근 <글로벌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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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사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였다.
결과적으로 난 2.2%의 오차율로 예측을 했는데 이 기록은 상당히 정확한 것으로 언론에 크게 다루어졌으며 조사의 신뢰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나는 국내 최대 조사회사였던 G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조사경력 3년차로 갓 신입사원티를 벗어난 상태였는데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6개월 동안 밤낮없이 일하면서 매주 조사 결과를 해석,당시 고객이었던 정당을 위해 선거전략을 수립해 주는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선거는 김영삼 후보가 선두를 유지하고 김대중 후보가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당시 각 선거진영에서는 목숨을 건 선거전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대규모 유세전,상대방 후보에 대한 극단적인 비방,돈 살포 등이 난무했던 시기였다.
실제는 1,2,3위가 일정 간격이 벌어진 형세임에도 언론에서는 각 후보가 백중지세라고 보도하고 있어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저널리즘을 생각하면 좀 우습기까지 했다.
선거 4일전,우리의 고객 정당에 마지막 보고서를 전달할 때의 일이다.
조사 결과를 계속 추적해 본 결과 2위 후보가 1위 후보를 역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용기를 냈다.
보고서에 조사 결과 수치와 함께 한마디 적었다.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미리 축하합니다."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전에 이런 축하메시지를 보낸 조사회사는 아마도 지구상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6개월간 국가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서 진단하고 예측하는 일을 담당했다.
선거 다음날 아침 김영삼 후보의 당선 소감이 TV로 전국에 생중계됐을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개월동안 목숨을 걸 정도로 나를 던져 일한 결과를 보았던 것이다.
바람이 어디서 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 흔적은 남는다는 이야기처럼,이 선거 조사 경험이 나에게는 더욱 성숙된 조사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조사인으로서 사회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감사드린다.
ykji@globalr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