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세계 자원전쟁] <2> 신천지행 '오일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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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패예요.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와 2시간 넘게 테이블에 앉았지만 전혀 진전이 없네요.본사에는 뭐라고 보고해야 할 지..."
지난 12월초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한 레스토랑.
두꺼운 코트를 벗는 곽정일 한국석유공사 카스피해전담반장의 표정은 난감하기만 하다.
곽 반장은 다른 팀과 1주일씩 교대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며 카자흐스탄 정부와 광구권 협상을 벌이고 있는 터.
"1사1광구 원칙만 되풀이하니..."
석유공사는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 해상의 마함벳 광구를 공동 탐사키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하지만 이 1개 광구만으로는 탐사비용도 뽑기 어렵다.
추가광구를 배정받기 위해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카자흐스탄 국영석유사 '카즈무나이가스'의 바티르바예프 부사장 방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봤지만 꿈쩍도 않는다.
"돈다발을 싸들고 찾아오는 회사들이 줄을 서있는데 유전을 쉽게 내주겠습니까?"
곽 반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원유가 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몇 개의 석유통을 낙타등에 싣고 우랄강을 건너다닐 정도로 소규모였던 이 곳이 최근 들어 세계 굴지의 원유매장국 반열에 올랐다.
카스피해 바다 밑에만 중동 전체 매장량(7천6백억배럴)의 3분의1에 해당하는 2천6백억배럴의 원유가 묻혀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으니 열강들이 이 곳을 놓칠리가 없다.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도시 아티라우의 '아메리칸 빌리지'.깔끔히 단장된 수십채의 빌라촌을 무장 병력들이 철통 경호를 펴고 있다.
셰브론텍사코 엑슨모빌 등 미국계 석유메이저의 직원과 가족 6백여명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곳에 온 지 벌써 6년이나 됐다는 셰브론텍사코의 안토니오 팔메이림씨(38)는 "겨울이 7개월이나 계속되는 이런 오지에 누가 오고 싶겠느냐"면서도 "그래도 기름만 난다면 지옥에라도 찾아갈 것"이라고 웃었다.
서울 서린동 SK㈜ 본사의 캐나다프로젝트TF팀 사무실은 텅 비어있기 일쑤다.
캐나다 캘거리가 주된 활동무대이기 때문.상당수 팀원들은 지난 크리스마스를 캘거리에서 보냈다.
지난해 8월에 시작된 미국 헌트오일사와의 파트너 협상이 해를 넘기고 있어 도저히 귀국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다.
겨울이면 수은주가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는 캘거리.석유개발업 종사자만도 50만명을 넘는다는 이 도시는 "한 방울의 원유라도 건져가겠다"는 외국 석유회사들로 한겨울에도 열기가 그득하다.
"캐나다에 함께 진출하려는 미국 헌트오일이 과도한 지분참여 비용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캐나다가 오일 샌드(Oil Sands)를 포함하면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국이니 포기할 수는 없지요."(이양원 팀장)
오일샌드는 경제성 문제로 그동안 방치돼 있었지만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세계 원유메이저들이 앞다퉈 캐나다로 몰려들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아티라우나 캐나다의 캘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마지막 남은 프런티어'로 불리는 사할린 가스전은 접근조차 어렵다.
12월로 접어들면 바다가 얼어붙어 채굴작업은 올스톱 돼버린다.
지난 83년부터 석유공사의 시추작업을 도맡아 했다는 장광훈 시추선운영팀장도 사할린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인천공항에서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까지는 직항로로 2시간30분 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현장에 접근하려면 기차로 15시간,비포장 도로로 8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공사에 필요한 기자재 하나를 통관시키려고 해도 6개월 이상 걸립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도 '꿀을 찾는 벌떼'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거대한 판매시장에 근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가스를 파내기만 하면 당장 수지맞는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엑슨모빌 셸 등은 이미 사할린 1,2 광구를 개발,생산 중이거나 생산을 앞두고 있다.
카자흐스탄 석유협회의 사기벤 누르갈리예프 회장은 "세계의 좋은 유전들은 미국 영국 등 이미 메이저들의 손에 대부분 넘어갔다"며 "하지만 또 다른 신천지를 찾는 석유 사냥꾼의 경쟁은 메이저들의 독무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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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고광철 뉴욕 특파원, 최인한 도쿄 특파원, 한우덕 상하이 특파원, 오광진 베이징 특파원, 정구학 차장, 조일훈 김병일 정태웅 류시훈 기자(산업부), 이정호 기자(경제부), 김정욱 기자(영상정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