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첫 항해를 시작한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순항을 거듭해왔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난파될 위기에처했다. 부천시의 홍건표 시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30일 오후 부천시청에서 총회를 열고 김홍준 집행위원장의 해촉안을 12(찬성):3(반대)로 가결시켰으며 대신 정홍택 신임 집행위원장의 위촉안을 표결없이 통과시켰다. 김 위원장의 해촉은 상당수 영화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됐다는 점에서 향후 부천영화제의 위상과 운영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날 총회 직전에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허진호를 비롯한 감독 11명과 최민식, 설경구, 이영애, 정우성, 강동원, 류승범, 박해일, 조승우 등 배우 28명 등스타들이 영화제 참여와 출품을 거부할 뜻을 밝힌 데 이어 독립영화계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단체들이 연합해 부천영화제를 보이콧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자칫 한국 영화인들의 참여 없는 `절름발이' 국제영화제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영화제 조직위가 지적한 해촉 사유는 지난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상원장으로 임명된 김 위원장이 이 때문에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집행위원장의 직책이 상근직이 아닌 데다 전주영화제의 경우 최민 전 집행위원장도 영상원장과 겸임해 무리없이 위원장직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조직위 주장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김 집행위원장의 임기는 아직 2년 4개월이나 남은 상태. 눈에 보이는 잘못도 없는 집행위원장을 조직위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서둘러 해촉시킨 것은 오히려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으로 집행위원장을 갈아치우려는 시장의 의도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위원장의 해촉에 대해 영화계가 한 목소리에 가까운 반발을 보이고 있는 것은그가 1회 영화제때부터 영화제에 관여하며 부천영화제를 성장시킨 실질적인 주역 중한 명이라는 점에 있다. 1997년 1회 축제때부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그는 2001년부터 4년간 집행위원장직을 맡으며 대중과 마니아들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부천영화제만의 특성을 잘 가꿔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홍준 집행위원장 해촉은 그동안 수차례 제기돼 왔던 지역 문화예술축제에서 민(民)과 관(官)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선례를 남기게 됐다. 그동안 성공을 거둔 지역 축제에서 관의 역할은 `간섭'이 아닌 `지원'이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잘 지켜진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시작 10년만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매김을 했고 최근까지 이런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졌던 부천영화제도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반면, 지난 1998년 최민 전시총감독의 해임으로 논란이 일었던 광주비엔날레는 최근까지도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촉안 반대모임을 이끌었던 원승환 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이번 경우처럼지방 정부가 마음에 안드는 축제의 집행위원장을 해촉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법적인 제재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지역 문화축제에서 관과 민의 관계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