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계 펀드가 그동안 국내 증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계 펀드를 제치고 주도 세력으로 부상,주목된다. 증권업계에서는 향후 증시 향방이 유럽계 펀드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커 이들 자금의 매매 행태를 주시해야 한다는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유럽계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9월 이후 미국계 펀드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외국자금 중 유럽계 펀드 비중이 36.8%로 미국계 펀드 비중 25.7%를 11.1%포인트 웃돌았다. 특히 헤르메스와 슈로더 등 대규모 영국계 펀드들의 국내 주식 매매가 급증하면서 영국계 투자자 비중이 25.0%로 미국계 펀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유럽계 비중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최근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매도를 이들 펀드들이 주도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동원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 11월 외국인의 전체 순매도 금액은 3천3백2억원이었으나 유럽계 펀드는 이보다 더 많은 3천3백88억원을 순매도했다. 다른 지역 펀드들이 순매수하는 사이 유럽계 펀드가 대거 매도에 나선 것이다. 김세중 동원증권 연구원은 "지난 10월 이후 3개월 동안 외국인이 2조9천억원어치를 순매도했는데,이중 대부분이 유럽계 자금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실제 국내에 1천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유럽계 펀드들은 10월 이후 거래소와 코스닥의 주요 종목을 꾸준히 팔아치우고 있다. 유럽계 매매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매매가 전체 외국인의 매매 기조까지 결정하고 있다. 윤용철 리먼브러더스 상무는 "유럽계 펀드가 기업실적이나 주가 저평가 수준 등 펀더멘털 측면보다는 경기 변화를 중시하고 있어 미국계 펀드보다 단기투자 성향이 짙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유럽계 자금이 최근 급격한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국내 경기 전망을 미국쪽 자금보다 더욱 부정적으로 보고 대거 매도에 나서면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매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김석규 B&F투자자문 사장은 "특히 소버린과 헤르메스자산운용처럼 국내 증시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펀드의 상당수가 유럽계"라며 "최근 들어 투기적 성향의 유럽계 자금 유·출입이 활발한 만큼 이들의 매매 행태에 따라 국내 증시 변동 폭도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