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전혁 < 인천대 교수ㆍ경제학 > LG카드 채권단이 다시 한번 LG그룹에 출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LG카드의 정상화를 위해 LG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7천7백억원의 기업어음을 출자전환하라는 압력이다. 채권단의 요구에 대해 LG측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증자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대해 채권단은 여신규제와 검찰고발을 검토하겠다는 으름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채권단의 LG에 대한 압력을 보자니 과거 '관치금융의 추억'이 재연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 고약한 점은 채권단이 LG카드 증자문제를 여론재판식으로 몰아가는 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이미 LG카드는 LG그룹과는 전혀 관계없는 회사다. 속된 말로 무늬만 LG라는 얘기다. 청산을 하건, 증자를 하건 채권단이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채권단은 부실경영 원죄론을 들어서 LG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1월 맺은 'LG카드 채권금융단과의 합의서'에 따라 의무를 차질없이 이행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LG카드의 인수를 끝마쳤고 경영진도 자체 선임했다. 따라서 추가적인 부실이 생겼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채권단의 책임이다. 채권단은 이러한 부실이 작년 실사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숨겨진 부실이라고 항변한다. 채권단의 입장에서는 일견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항변은 결국 누워 침뱉기에 지나지 않는다. 합의서상 LG그룹의 자금지원 규모는 채권단이 지정한 회계법인의 실사에 따라 결정됐다. 만약 실사가 기술적으로 어려웠다거나 시간이 촉박했다면 향후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부실에 대해 LG그룹의 추가지원 의무조항을 명기했어야 했다. 이러한 조항을 검토하는 것은 상거래 계약상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겨진 부실 운운하면서 LG그룹에 증자를 요구하는 것은 '신용을 먹고사는' 금융기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에도 어긋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채권단의 요구대로 LG그룹 계열사들이 LG카드에 자금지원을 할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은 또 어떻게 지나 하는 것이다. 우선 LG그룹 상장계열사들의 경우에 이사회가 동의할리 없고 설령 이사회가 동의하더라도 주주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채권단이 회사 경영진을 배임이나 주주집단소송에 빠뜨릴 불법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 아닌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금번 LG카드 증자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슈들도 흘러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즉 LG카드 대주주들의 지분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불공정주식거래 조사와 파주 LCD단지 신규여신 중단 위협 등의 이슈들이다. 만약 불공정 주식거래가 있었다면 그것은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처벌하면 되는 일이다. 파주 LCD단지에 대한 여신과 관련해서도 주거래은행이 사업성을 평가해서 추가대출 여부를 판단할 일이다. 이러한 이슈들이 금번 LG카드의 증자와 연결된다면 시장질서는 더욱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분명한 건 LG카드 증자문제는 전적으로 채권단의 문제라는 점이다. 장하성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채권단에 금감원까지 가세해 LG그룹에 대해 출자전환을 압박하는 건 정부가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셈"이다. 만약 LG그룹이 추가증자에 참여한다면 이는 불공정주식거래 조사와 관련한 뒷거래(flea bargain)나 관치금융 부활의 의혹을 제기시키기에 충분하다.그 화살은 종국에는 금융감독당국을 향할 수밖에 없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LG그룹에 도의적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도의적 책임을 져야할 장본인들은 누군가? 추가적인 부실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부실합의를 하고 그래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시킨 '국책'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아닌가? 계약은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있어야 할 관치금융이라는 낡은 칼로 기업을 위협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