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고등학교. 그때의 나는 국어선생.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5층 쯤에서 장난기 많은 한 녀석이 내 이름을 불렀다. "진숙아-" 나는 손을 씻다 말고 짐짓 눈을 부릅떠서 올려다보고는 그 녀석을 찾으러 갔다. 속으로는 웃음이 났지만 나의 대응방식이 향후 아이들과의 관계를 좌우하게 될 것이어서 쿵쿵 발소리도 힘차게 올라갔다. 물론 올라갔을 때는 녀석은 달아나고 애꿎은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단체 기합을 주었다. 아이들이 녀석의 이름을 끝까지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일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러나 내가 주는 벌을 선택했다. 엎드려 뻗치기를 시키고는 아이들이 끙끙거릴 쯤에 30분을 더 그러고 있으라 하고는 돌아서 나왔다. 아마도 한 녀석이 슬쩍 일어나 내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들 우루루 일어났을 것이 틀림없었다. 체벌은 명분이 있어야 하고 직접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인격적이며,무엇보다 벌을 받는 아이들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형식과 내용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페스탈로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교사는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해야 한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랑스럽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사랑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알게 마련이므로 체벌이나 잔소리가 사랑 때문인지 아닌지는 맞거나 들으면서 이미 아는 것이다. 더욱이 규율과 교훈,윤리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과 실천을 가르치는,수업보다 더 중요한 이 일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멋진 한 인간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심정은 사랑이 아니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지 않고 아이들은 그것을 또 느끼게 마련이니까. 어느 날의 수업시간이 떠오른다. 무엇 때문인지 이야기가 '신사'에 대한 데까지 갔다. 어떤 사람을 신사라고 하는가. 자기 자신을 자제할 줄 아는 인간,약자를 보호하고 옳은 일을 옹호하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이 신사다. 그런 신사야말로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멋진 남자다. 그러니 여러분은 신사가 되어라.그때 아이들의 빛나던 눈동자들을 잊을 수 없다. 휴대폰 커닝에 이어 여중생을 협박,윤간하는 파렴치한 일이 어찌 아이들만의 잘못인가. 통재라. 과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양심과 윤리를 솔선수범했는가?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더욱 참담할 피해 학생은 물론 가해 학생들이 돌이킬 수 없이 파멸되는 이중 삼중의 불행을 줄일 사랑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