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간결함의 힘 ‥ 차석용 <해태제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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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석용 해태제과 사장 lynn@ht.co.kr >
'어떤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명함 뒷면에 다 적을 수 없다면 실행하기에 너무 복잡한 것이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장황한 편지보다 간결한 한두 줄에 마음이 움직였던 경험이 있던 분들은 공감이 가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도입될 예정인 미국의 로스쿨 교육은 몇 십페이지가 넘는 사건의 개요를,적용해야 할 법률과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간결하게 축약하는 훈련으로 교육을 시작한다.
미국 로스쿨의 모든 강의는 교재에 포함돼 있는 사건 케이스를 브리프(Brief) 형식으로 압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필자가 로스쿨 재학시 한 교수님은 사건 브리프를 얼마나 간결하게,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설득력 있게 쓸 수 있느냐가 재학시는 물론 로스쿨 졸업 후 법조인으로서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하면서,한 장으로 잘 요약된 브리프는 두꺼운 자료보다 몇 배의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말씀하셨다.
20년 가까이 필자가 근무한 피앤지(P&G)의 사내 서류작성 지침에도 이와 비슷한 1장 메모(One page memo)제도가 있다. 생각이 잘 정리되고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다면 서류가 두 장 이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제도다.
한 장 메모는 직원들의 생각을 간결하고 투명하게 만들고 업무의 간소화를 이루어 지난 1백60년 동안 피앤지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많은 경영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요즈음 신문이나 방송 또는 정치,경제,사회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수많은 말과 글들이 오고 가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그것이 왜 옳다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과다한 정보 공급으로 머리만 복잡해질 때가 많다.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다. 경영자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쏟아내는 말과 지시는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회사를 표류하게 한다.
말을 하기 전에 많은 시간을 생각하면 할수록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결해지고 또 명확해진다.
말을 하기 전에 왜 대화를 해야 하는지,대화의 결과로 무엇을 이루어내고 싶은지,또 어떤 순서로 말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축약된 언어로 말하거나 메모로 정리하면 더욱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행동보다 말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어느 때보다 길고 깊게 생각하고,쉽고 간결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