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화기구(ISO)의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인 ISO22000의 내년 상반기 시행이 사실상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업계는 인식부족과정보부재로 이 제도의 실태와 영향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규격의 구체안이 나와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ISO 22000은식품안전에 대한 국제규제가 대폭 강화되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내 식품업계와 인증업계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ISO 22000이란= ISO 22000은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과 품질경영시스템(ISO 9001), 환경경영시스템(ISO 1401) 등 식품안전에 관한 기존 국제인증 규격을 모두 통합한 것이다. 다시말해 지금까지는 식품을 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선 안전부문과 품질부문,환경영향 부문 등으로 나뉘어 있는 인증을 각각 받아야했지만 ISO 22000이 발효되면이 통합인증 하나만 받으면 된다. 따라서 일단 ISO 22000 시스템내에서는 종전보다 기업의 식품안전 관리가 절차상으로는 훨씬 간편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식품업체들이 안전과 품질, 환경 등 모든 분야의 까다로운국제기준을 전부 충족시켜야만 수출이 가능한만큼 식품에 대한 국제적인 수출규제기준은 더욱 강력해진 셈이다. 더욱이 ISO 22000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식품안전관리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는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라는 말대로곡물,사료 생산자에서부터 1,2차 식품가공업자, 도.소매업자에 모두 적용되는만큼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ISO 22000은 덴마크 주도로 지난 2001년부터 규격개발이 시작됐는데 식품 수출국인 덴마크, 호주, 스웨덴은 긍정적이고 독일, 스위스 등 수입국은 유보적인 자세를 보여왔으며 미국도 일부 조항에 반대했으나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국내 업계 피해는 없나 = ISO 22000 발효는 우리 업계에 위기이자 기회다. 지금까지 식품안전과 품질경영, 환경영향 규격을 충실하게 이행해온 기업이나자금력 있는 대기업들은 인증시스템이 통합되면 기존보다 더 효율적인 식품안전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미국 주도의 HACCP가 각국별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 수출국에 따라 각기다른 방식을 충족시켜야했지만 ISO 22000은 규격이 통합되는만큼 이에따른 비용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덴마크나 스웨덴 등 유럽의 식품산업 선진국과 미국이 가세해 만든 통합규격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국내 업체들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선 비관적이다. 유경희 산자부 기술표준원 연구관은 "정보에 어둡거나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기업들은 ISO 22000 인증을 받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아 반입이 금지된 한국산 식품과 의약품, 전자제품이 550건으로 91개국중 10위에 오른 것은 우리나라 식품안전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더욱이 식품의 1차 생산자인 농민에서부터 최종 소매업자에 이르기까지 ISO 22000 규격에 맞추지 못할 경우 수출을 위한 판매 자체가 어려운데다 만약 유통된 식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리콜(Recall)도 의무화돼 있어 자칫 기준에 미달한 식품을 유통시켰을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또 식품 가공업자는 원재료를 구입할 때 인증 규격에 맞는 재료를 구입해야 하는 만큼 ISO 22000 기준을 충족하는 원재료 판매업자 수가 적을 경우 가공업자도 연쇄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대책 마련 서둘러야 =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인 대책은 물론 국내 업체들의 식품안전 인식 제고를 통한 식품산업의 선진화가 가장 중요하다. 식품업계의 안전장치를 공고하게 마련하는 일은 비관세 무역장벽을 넘어 식품수출의 활로를 여는 것 뿐아니라 선진국을 향한 국민 보건위생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대책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선 식품 관련업체들은 ISO 22000이 기존의 인증제도와 다른 특성을 빠른 시일내에 파악, 이에 대비한 경영여건을 갖추는 일이 급선무다. 또 정부는 현재처럼 생산, 가공, 유통 등 단계별로 분산된 관리체계에서 탈피,모든 식품을 일괄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일이 시급하다. 지난 2000년 수입 납 꽃게 사건 당시 수입 소관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국내유통을책임진 식약청이 장기간 소관 논쟁을 벌여 업체 피해를 발생시킨 것이 분산 관리체제가 보여준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인증업계의 개선도 당장 필요한 대책이다. 식품안전과 품질경영, 환경영향 등을 총괄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인력 양성과국내 인증서 효력의 국제상호인정을 위한 노력, 시범사업 운영을 통해 시행착오를줄이는 것도 당장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CJ의 박대우 부장은 "ISO 22000의 식품안전과 품질경영 규격을 정부가 어떻게식품 관련업체에 교육시키느냐가 식품업계로선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기자 faith@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