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한국의 장래가 걸려있는 '첨단산업기술'이 해외로 새고 있다. 휴대폰,PDP,LCD기술 등 우리 기업들과 우수인력들이 수십년에 걸쳐 각고 끝에 세계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첨단기술이 잇달아 유출되거나 해외유출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저지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중국 등 경쟁국에 추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 안되는 주도기술마저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한국경제의 앞날에 치명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해외의 유혹=지난 8월 대만의 한 호텔 객실. 6세대 LCD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던 대만 모 전자회사의 사장 주모씨가 운을 뗐다. "기술부사장 자리다. 서너명을 함께 데려오면 80만달러의 인센티브를 보장한다." 국내 A사 유모 과장(36)은 "연봉을 2배로 달라"고 했다. 다음날 서울 명동의 한 쇼핑몰 커피숍. 유씨는 같은 회사 LCD 전문가 3명을 불러모았다. 그는 "연봉 2억원과 집,승용차가 나온다,옮기자"며 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세명은 3년 간의 전직금지 서약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들은 퇴직시 반납한 노트북에서 유출 흔적이 복원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한 사람이 빼돌린 정보만 해도 3만4천여개,34기바바이트 분량으로 LCD공장을 새로 세우고도 남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 좁히는 주범=이번 A사의 해외유출 미수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정원에 따르면 98년부터 현재까지 적발된 첨단기술 유출사건은 모두 62건. 예상피해액이 57조여원에 달한다. 특히 올해는 11월 말까지 22건(예상피해액 31조원)이 적발돼 지난해(6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상황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미지 및 대외신인도 등을 고려해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실제로는 공식통계의 서너배에 이를 것이라는 게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한국이 주도해온 정보기술(IT)이 중국 대만 등과의 기술격차가 2∼5년 이내로 급격히 좁혀지고 있는 데는 한국에서 유출된 기술과 인력들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노골적인 산업스파이='산업스파이'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단숨에 기술격차를 좁힐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기술을 통째로 빼내는 것은 물론 위장취업,가짜 인수합병(M&A) 등 수법과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홍콩 싱가포르 대만 중국 현지에는 이 같은 기술인력을 중개하는 브로커들까지 활약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대기업 기술연구소 연구원은 "해외 제품시연,국제세미나 등에서 알게 된 지인이나 헤드헌팅 업체 등 다양한 루트에서 수시로 접촉해온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기술거래나 M&A를 빙자해 접근한 뒤 원하는 정보만 확보하면 계약을 파기해버리는 형태도 늘고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