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부모의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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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받아온 '신입생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다 보니 부모의 직업(구체적으로) 학력 주택상황(자택 전세 월세 기타) 생활정도(상 중 하 생활보호대상)란이 있더군요.
우리 부부는 고졸에 남편은 작은회사 사원입니다.
생활정도에선 한참 생각하다 '중'에 체크했어요."
'캐나다 이력서엔 없어도 되는 게 세 가지 있다.
사진 생년월일 성별이다.
출생지 본적도 필요없다.
이력서만 놓고는 백인인지,젊은지,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도록 해 서류심사 첫단계의 차별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앞의 것은 한 주부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띄운 편지,뒤의 것은 홍성욱 교수(서울대)가 캐나다 토론토대학 재직시 쓴 글이다.
홍 교수의 얘기는 성별 본적 출생지 주소 출신학교 결혼 여부는 물론 호주 및 호주와의 관계까지 밝히도록 요구하는 우리 이력서가 입사시험 첫단계에서 어떻게 차별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고도 남는다.
편지를 보낸 주부는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을 아는 게 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잘사는 집 애들은 처음부터 특별 대접을 받지 않을까,편부모 또는 생활보호대상 가정 애들에 대해 선입견은 안생길까"라고 물었다.
이 경우는 아이가 어려 부모가 썼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되면 대개 아이들이 직접 적는다.
그러다 보면 셋집에 살거나 부모의 직업이 번듯하지 못한 아이들은 심한 좌절감을 겪는다.
학급당 35명이 넘는 아이들의 형편을 쉽게 파악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아이들의 특성 대신 부모의 학력과 직업이 왜 필요한지는 납득할 길이 없다.
대학 입시원서에 부모의 직업 및 직장 연락처를 기재하도록 해온 관행을 놓고 국가인권위가 교육부에 시정을 요구한데 이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협조를 요청했다는 소식이다.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받았을 심리적 압박과 '혹시나 이것 때문에'하는 불안에 떨었을 걸 생각하면 숨이 멎을 것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차별적 요소를 배제해도 발생할 수 있는 게 차별이다.
모든 배경을 떠나 오직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 성품 자질만을 기준삼아야 할 대학에서 부모의 경제력을 참고하겠다는 식의 관행은 당장 깨져야 마땅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