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국의 중대 고비 때마다 돌파구를 찾는 수단으로 활용됐던 여야 영수회담이 정치사의 `박물관'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3부 요인과 4당 대표 등 지도부를 초청한 가운데 열린 만찬회동에서 "영수정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하고, 영수회담을 통해 막힌 정국을 뚫고 입법문제를 해결하던 `낡은 방식'을 쓰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영수회담은 통상 여당의 총재인 대통령이 제1야당의 총재를 단독으로 만나 중요정국현안을 논의하고, `담판' 또는 `빅딜'을 통해 해법을 제시하곤 했던 형식의 회담. 그러나 탈(脫) 권위와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 정착을 강조해온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1인 보스 중심 정치체제의 유물인 `영수회담'이라는 용어 자체에 강한거부감을 보여왔고, 실제로 1년9개월의 집권 기간에 진정한 의미의 영수회담을 한번도 열지 않았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12일 열렸던 청와대 회동에는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을 비롯한 6명의 지도부가 한꺼번에 참석했고, 같은 해 12월14일열렸던 회동은 4당 대표 회동의 형식이었다. 실질적인 영수회담이 열린 것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재임중이던 지난 2001년 10월9일 당시 김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청와대에서 만난 것이 마지막. 사실상 3년가까이 고전적인 의미의 영수회담이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어도노 대통령 집권기간에는 영수회담이 열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영수회담에 대한 여권의 지도급 인사들의 인식도 노 대통령과 일치한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은 최근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입법 문제와 관련된 모든 일은 다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입법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과 맞지도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도 26일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회의에서 "(여당의) 평당원인 대통령한테 가서 (야당이) 국가보안법 문제를 중언부언, 삼언사언하는것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이미 바뀐 패러다임 자체를 야당에서 빨리 이해하고새로운 관행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시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영수회담 폐기 선언이 "일방적으로문제만 던져놓고 해결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4대입법을 둘러싼) 상황의 골격은 대통령이 TV에서 `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자'고 한 데서 나온것"이라며 "대통령이 생산하고 안을 만들고 나서는 지지든 볶든 정치권에서 하라고넘긴 것이고, 현안을 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노 대통령이 말한) 원칙 자체는 일리가 있다 해도 아쉽다. 많은 어려움이 노 대통령때문에 생긴 것인데도 책임의식이 없다"며 "설사 자신이 일으킨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을풀려고 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여야의 최고 책임자가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다만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데서 오는 오만이자 교만"이라면서 "그러나 국회의원 재.보선 등으로 원내 의석수가 달라지고, 국정이 어려워질 경우 바뀔 수 있다"고 지적, `영수회담'의 부활 가능성을 점쳤다.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수뇌부는 영수정치라는 톱다운 방식의 패러다임을 탈피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청와대 회동은 중요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각부 요인과 정당 대표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될전망이다. 문제는 이번 회동을 `제1야당의 위상 격하'로 받아들이는 한나라당이 앞으로 `설명회' 형식의 청와대 회동에 불참할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가뜩이나 좁아진여야간 대화창구가 더 협소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전날 회동에 대해 "야당의 위상이격하된 것이고, 깔보인 것"이라며 "제1야당의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켜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전락시킨 행동들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며 당 지도부의 대여투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결국 `영수회담'이라는 카드의 용도폐기를 기정사실화한다면, 정국의 바퀴가 쇳소리 없이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야 지도부의 더욱 활발하고 빈번한 회동과대화가 반드시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