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도쿄 니혼바시의 노무라증권 본사.


연금투자 취재를 위해 접견실에서 연금업무부 팀장을 기다리는 사이 비서실 여직원이 커피를 내오며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 기자세요.


한국드라마 너무 재미있어요.


꼭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곧 이어 만난 연금업무부의 마도노 팀장은 명함을 교환하자마자 "와이프 때문에 '후유노소나타(겨울연가)'를 봤다.


나는 최지우 팬이다"며 반갑게 맞았다.


요즘 일본인을 만나면 한국 드라마를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중장년층은 한국 드라마, 영화를 한 두 편씩 봤고, 배우 이름 몇 명 정도는 외고 있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일본인이 늘어, 관공서 업무나 비즈니스가 예전보다 부드럽게 진행된다고 주재원들은 말한다.


오쿠다 히로시 일본 게이단렌 회장(도요타 자동차 회장)은 최신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선물로 받고,너무 좋아했다는 소식도 있다.


올초부터 일본 열도에 불기 시작한 '한류붐'은 대중문화를 넘어 경제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한국 기업은 물론 재일교포들은 '한류'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최근 도쿄와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에는 새로 문을 여는 한국가게들이 급증 추세다.


도쿄 오쿠보거리에는 11월 초 한국 전통공예품을 파는 '인사동'이라는 가게까지 생겨났다.


한국식 대형 사우나도 12월 개장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주말이 되면 한국식당에서 불고기로 점심을 먹고,한국 서점에 들러 책이나 비디오 등을 산 뒤 한국슈퍼에서 쇼핑을 하고 귀가하는 '일본인 가족'들도 눈에 많이 띈다.


도쿄에서 가장 큰 한국슈퍼를 운영하는 김근희 장터 사장은 "지난 해보다 매출이 2∼3배 늘어났다"며 "솔직히 장사가 너무 잘 돼 어지러울 정도"라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한글교실,한국요리학원 등도 덩달아 인기몰이 중이다.


NHK 한국어교재는 매달 50만부나 팔릴 정도로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많다.


유진환 도쿄 한국문화원장은 "반년은 기다려야 할 만큼 수강생이 많지만,젊은층으로 대상이 확대된 것이 더욱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의 50% 이상이 '한국인'을 좋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간 국제결혼을 소개하는 상담소의 경우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여성이 지난 2월 80명에서 8월에 1천2백명으로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한류 열풍이 거세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사카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박혁신 사장(42)은 "한류붐은 흥미를 가진 일부 마니아들 사이의 유행으로 실제 한국문화나 상품에 대한 재평가를 받으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23일자 도쿄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한국 배우에 열광하는 일본인이나 과잉보도하는 TV방송국을 보면 화가 난다'는 의견도 실렸다.


한류 붐을 지속적으로 확산시키려면 한국문화의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양국간 문호개방 확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쿄·오사카=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